직업은 사람의 시야를 바꿔놓는다. 혹은 전문 분야를 통해 특정한 시야가 발달한다. 아는 게 많을수록 보이는 게 많다는 것이다. 건축가 서현은 2004년 북한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났을 때, 현장을 뉴스로 확인한 의사의 눈은 다친 아이에게 가 있었을 것이고 건축가는 벌거벗은 건축물 사이에 단열재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와 건축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오랜 기간 이루어진 학습과 경험을 통해 일반인과 다른 섬세한 관찰력을 획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을 이롭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예리한 관찰력 때문에 지칠 일이 많다. 우연히 시선을 돌리면 어딜 가나 치료가 긴급한 사람이 보이고 보수가 시급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혹은 방치하다가 병을 키운 어리석은 사람이 보이고 애초에 왜 저기에 왜 저렇게 지었을까 싶은 건물이 부지기수다.
일례로 그는 올바른 도서관 상을 제시하기 위해 먼저 서양 고대 문명 속 지식의 창고를 뒤적인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프랑스 베네딕트 수도원에도 들른다. 이어서 도서관이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도서관은 우리의 공화국이 수행해야 할 임무 중 가장 고귀한 것”이라던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연설을 인용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간다. 근엄한 좌우대칭의 건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지만 지식에 목마른 학생을 찾지 못한다. 고시 준비에 불타오르는 청춘들만 보고 나온다.
책의 부제는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이고, 출판사는 ‘건축서보다는 정치적이고, 정치서보다는 인간적인 서현의 건축학’이라고 책을 요약한다. 건축가이자 대학교수인 저자 서현은 학교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강의할 테지만, 학교 바깥에서는 건축을 둘러싼 정치와 인간을 살핀다. 그리고 올바른 도시계획과 깊이 있는 건축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한다.
이미 많은 책을 출간한 작가는 도시의 살림을 책임지는 공무원과 철학이 부재한 건축가를, 나아가 글로 밥을 먹는 어떤 이들을 좀 부끄럽게 한다. 오래 관찰하고 오래 고민하고 손으로 꾹꾹 눌러쓴 것 같은 성의의 글이 쏟아진다. 건축가는 결국 이상적인 도시와 건축을 나눠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먼저 반성의 도시와 건축을 세상과 나눠야 한다고 그는 글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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