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들이 짓는 ‘공예의 집’

칼럼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2-06-22 20:06:57
2022 공예주간, 지난 5년을 돌아보며
공예의 집은 어디인가?
공예 365를 상상하며
▲ 2022 공예주간 기간에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소반전 <소소하게 반반하게>

 

 

<2022공예주간>은 올해 주제어로 “우리 집으로 가자”를 내세웠다.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KCDF)은 지난 4년간 “공예로 일상의 가치를 높이다”(2018), “우리가 공예를 사랑하는 방법”(2019), “생활 속 공예 두기”(2020), “공예로 떠나는 여행”(2021)를 메시지로 대중에게 공예 생활의 저변을 확장해왔다. 

 

“우리 집으로 가자”는 공예가 머무는 최종지로서 사람의 자리에 공예품도 가족의 일원으로, 집의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물격(物格)의 위치를 준 것으로 이해된다.

집은 동굴과 같다. 어둠과 추위와 외부 적들로부터 생명을 보호받는 장소이면서 가족의 안위와 휴식이 보장되어야 하는 거주지이기도 하다. 또 구성원의 안목과 취향, 가족 구성원들의 풍경이 흐르는 공간이다. 그곳이 오래 전부터 합리적 가격과 기능이 맞닿은 공산품으로 채워졌고 비슷한 용도와 합리적 소비가 작동하고 있다. 이런 공간에 공예가의 체험으로 만든 공예품이 도구의 현실성을 넘어 보편적 살림살이로 대체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예’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형식과 내용에 있어 급격한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은 꺼지지 않고 존재한다. 인류에게 있어 현존하는 최초의 공예는 ‘돌도끼’이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갈고, 다듬어진 돌도끼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장 초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낱 돌조각에 불과한 돌도끼가 인류 문명사를 알리는 최초의 도구로 적시되는 데서 공예의 본질과 가치는 이해됐다고 볼 수 있다. 돌도끼는 이동하는 빙하시대를 지나 정착이 가능한 신석기시대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그 기능과 용도를 발전시켜왔고 청동기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생활필수품이면서 생존을 위한 기물이었다.

 

▲ 인영혜 작, 울퉁불퉁/스툴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초월 능력을 가진 생명체로, 태어나면서부터 존재를 넘어 의식을 말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혹독한 추위로 삶의 일각조차 알 수 없는 선사시대에도 동굴의 벽화를 그렸고, 참혹한 현실의 이면을 조각하기도 했다. 또 현재 너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했다. 돌도끼를 공예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물로 인정한다면, 공예는 16세기 미술에 분리되고 19세기 산업화 구조에 따라 그 의미를 상실하기까지 일상의 사물과 미술 행위의 수단으로 인류와 동행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몸의 중심에서 미술과 산업을 분리한 현대공예는 예술과 유용성 사이에서 그 맥락을 재구성해야 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19세기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96)의 ‘미술공예운동’은 산업의 폐해와 예술의 재인식을 공예로부터 재정립하려 했으나 예술은 더 예술적으로, 산업의 첨단의 기술과 디자인으로 재무장해 공예의 주권회복 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공예가는 장인의 범주에 갇히게 됐고, 나라의 보호정책에 의지해야 하는 기생적 장르로 전락하면서 일상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쯤에서 짚고 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공예’라는 말의 어원이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공예工藝라는 언어를 쓰지 않았다. ‘공예’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서구의 문명을 수용하면서 그 어원을 고착시켰고 일제강점기와 함께 안착되면서 불안한 근대 공예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불린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기물器物’이라는 이름으로 가구의 유용성을 표현했고, 시와 서화는 자기 수련의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가다듬는 데 이용했다. 공예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재주” 혹은 “손으로 만든 도구”로 규정함으로써, 공예 정체성 해석이 모호해졌고 그로부터 현대공예는 방향성을 잃고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 ‘2022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젊은 공예가들이 자신을 수식하는 언어로 ‘공예가’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데서 그 이유는 좀 더 명확해진다.


▲ 2022 공예주간에 크래프트온더힐에서 열린 박진선, 유다흰, 이형준의 그룹전 <The Maximalist .002>전.


공예에서 예술과 산업이 분파한 16, 19세기의 상황과 20세기 근대공예는 21세기 공예의 시각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산업의 획일성 한계와 예술의 작위성에 따른 불편부당한 틈새를 메우는 장르로 공예를 접근시키려 하지만, 이미 산업의 고도화와 디지털 경제, 더 높아진 예술의 위상 앞에서 공예는 점점 더 협소하고 작은 마당으로 내몰린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예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 할 것이다. 공예는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움과 유용한 기능, 지역성과 역사성, 작가의 기능과 세계관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통섭적인 장르다. 예술은 사물의 효능을 고려하지 않으며 산업은 역사와 공예가의 태도를 나타낼 수 없다. 묵은 기술과 정직한 태도, 아름다움에 대한 질박한 안목과 행동은, 공예를 삶의 중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원의 힘이다. 예술도 산업도 디자인도 그 중력에 동참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현대 공예가의 몫이다.

문제는, 공예를 인식하는 태도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공예의 미래는 점점 어둠 속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공예품을 언급하기 전에 공예의 의미를 분명히 따지고 전해야 한다. 어느 장인의 반복된 행위에 감성을 이입해서는 안 되며, 예술이지 혹은 산업인지 모호한 태도를 규명해야 하고, 공예품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전통과 역사에 의지해 재현과 재발견하는 감성도 억제해야 한다. 예술과 산업, 디자인의 원천 공급자로서의 자부심과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구체화 하고 그것의 유용성이 특별하다는 것과 한 개인의 창조성과 노동의 진실이 인간에게 어떤 부가가치를 가지는 것인지를 차분하게 설득해야 한다. 공예가의 작업실은 예술가의 현실 대안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물의 가치를 적시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세상의 형세는 사람 빼면 모두 공예다. 그러나 역사의 뒷전으로 밀린 공예를 다시 부상시키려면 추억의 감성도 실체 없는 개념도 아닌 오늘 내 집에서 나의 삶과 동행하는 사물의 진심을 회생한다면 느리지만 조금씩 선명해지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산업의 오류와 예술의 낯선 스토리에 익숙해지면서 그 너머의 진실을 향해 서서히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연 물질이 주는 에너지의 체감이 그리운 미래가 분명히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가치가 사소한 사물의 이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시기는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공예, 공예품은 채우기보다 비움에 익숙해야 하고 더 큰 여백을 가져야 한다. 밥공기의 의미가 공空에 있듯 사물의 탄생 이유가 무엇이가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 젊은공예가들이 기획한 전시 포스터


“우리 집으로 가자‘는 집 안을 가득 채운 공예품의 공산품화가 아닌, 들어내고 난 후에 비치는 사물의 자리를 읽어내는 행동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전에 공예가들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 그런 상황을 준비하고 대중을 맞이해야 한다. 공예가들이 존재하지 않은 집을 누가 방문하겠는가?

‘2020 공예주간’은 새로운 공예의 집을 짓고, 물질에 피로해진 사회를 치유하고, 비약된 개념미술에 호도된 삶의 일상성의 다시 재건하는 작은 씨앗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현대공예는 물질 그 자체보다 공예의 순수한 태도를 공유하는 프로세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채움과 비움의 순환성, 물질 재료의 소중함, 노동의 의미 등이,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 존재해도 충분할 거 같다.

다시 공예시대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진짜 공예가를 양성해야 하고, 긍정의 사물을 잉태해야 하고, 공예철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공예의 일상 가치를 통해 공예를 사랑하고, 그것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 매일의 공예 여행을 우리 집에서 이루려는, 지난 5년간의 공예주간은 이제 시작의 씨앗을 잉태했다. 그 결실이 언제일지는, 누가 어떻게 가꾸고 지키는 가에 달려 있다. 이 과제의 중심에는 공예가들이 서 있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공예의 집을 짓고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공예주간은 ‘공예365’가 될 수 있다.

오늘의 공예로 살아가는 현대 공예가들의 노고와 각박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마냥 부탁하기도 송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집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보니 염치를 불구하고 간절한 소망으로 ‘2022 공예주간’의 말미를 대신한다.

 

* 이 글은 월간도예 2022.6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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