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식물은 울타리나 천장 없이도 자연과 상생할 수 있지만 사람은 태어나고 죽기까지 집이라는 공간에 매인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우리는 청춘의 시간을 부단히 소비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멸되는 시간과 맞바꾼 집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여기 삶의 남김, ‘여(餘)’의 가치를 비움으로 실현하는 건축가를 만났다.
건축가 강승희는 나무를 좋아하는 건축가로 그동안 수려한 목조건축을 선보였다. 지면에 소개할 경기도 용인시 물안마을에 입지한 ‘여풍재·경여루’는 올해 목조건축대전본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는 주택은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만족할까 내심 궁금하다.
풍경과 사람을 담는 집

배후에 산림과 아래로는 마을이 보이는 대지에 유리벽을 가진 육감적인 목조주택 여풍재가 자리한다. 서까래를 내고 나비 모양으로 양쪽 처마를 가진 날렵한 지붕모양이 비상할 듯하다. 열린 공간을 선호하는 건축주의 취향대로 거실을 8m 높이의 유리벽으로 개방했다. 목조주택답게 다양한 목재를 사용했는데 외관은 내구성이 뛰어난 루나우드(열처리 목재, Pine)와 현무암 외장재, 실내는 코르크, 레드파인 집성목, 자작나무 합판이 사용되었다. 본래의 지형경사를 살려 수직으로 3층 레벨로 설계된 주택으로 지하에 실내골프장, 1층에 거실, 주방, 식당, 2층에 침실, 드레스 룸, 피트니스 룸을 두었다. 각 실마다 문턱이 없고 곳곳에 한옥의 마루를 닮은 데크와 발코니가 외부로 나있다.

개방된 거실을 통해 집안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풍경이 들어온다. 간소한 살림을 꾸리는 집주인의 생활 모습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외부를 경계하며 사는 도시 생활과는 달리 마을을 향한 집주인의 오픈 마인드가 보인다. 주변 자연 경관과 사는 사람을 담아내는 솔직하고 담백한 집이다. 의류업계 대표인 사업가 유 씨에겐 집이란 일터에서 돌아와 쉴 수 있는 쉼의 공간이다. 화장실의 히노끼 반신욕조는 집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심지어 욕조 안에서도 풍경이 보이도록 창을 내었다. 창 넘어 한옥의 용마루와 팔작지붕이 보인다. 이 절묘한 연출은 사람의 발길을 어느새 마당으로 이끌어 툇마루에 앉힌다.


전통한옥의 재현

건축주 유 씨는 원래 황토방 한 칸을 집 안에 두길 원했다. 이 소박한 의견에 건축가는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에 영감을 더해, 누마루를 가진 한옥을 재현한다. 여풍재를 뒤로 빗겨서 자리한 경여루는 한 칸이 2.4m씩 6칸, 13.4평, ㄱ자형 구조로 거실-구들방-누마루를 가진 한옥이다. 외관상으로는 전통한옥이지만 두 칸의 거실은 부엌과 화장실을 둔다. 한옥의 일부는 지열난방으로 한 겨울에도 싱크대와 세면대에선 온수가 나온다. 마냥 불편할 것이라 여겨지는 한옥에 현대적인 재해석 과정을 거친 일상생활 가능한 살림집이다. 아궁이에 장작 군불을 때워 등 따뜻하게 지내는 집주인이 바라던 구들방도 있다. 지붕을 떠받히는 서까래와 도리, 굵직한 대들보가 보이는 누마루에 서면 경여루의 의미는 절정에 이른다. 사면을 개방하여 지붕과 기둥이 만드는 프레임 사이로 주변 산세와 경치가 화폭처럼 담긴다. 찻잔 기울이며 담소 나누는 여유로운 풍류도 누마루를 통해 고전 속 주인공처럼 잠시나마 경험해본다.


무심한 듯 서있는 마당의 소나무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조경은 생태 디자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소장(KNL 환경 디자인)이 맡았다. 한옥 시공에는 궁궐 건축의 대목장 신응수를 잇는 조재량 도편수가 맡았는데 이렇게 전통한옥 살림집을 지을 기회가 적다고 한다. 도면보다 도편수의 재량에 기품과 모양새가 바뀌는 한옥이기에 단순히 설계자·시공자 이상의 두터운 유대감이 한옥을 짓는 과정동안 형성됐을 것이라. 경여루에 쏟아지는 박수를 서로에게 보내는 겸손함은 어쩐지 우리 것 답다. 기와 한 장, 소나무 한 가지 휘어짐도 쉽게 자리 잡지 않았음에 감탄사를 보낸다.
동서양의 친환경 목조주택

서양식 기둥-보 구조의 목조주택 여풍재는 유리면이 많아 추울 거란 예상과 달리 실내는 오히려 따뜻하고 쾌적하다. 실내 환기는 지면에 가까운 창과 천창을 열어 자연스럽게 공기 순환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완공 후와 입주 후에 실시한 두 번의 실내 공기질 평가에서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는 ‘총부유분진값’이 제로가 나왔다. 이는 실내재, 바닥재, 가구재를 E0 또는 E1등급의 천연재를 쓴 덕분이다. 동쪽 평지에 수평으로 앉은 단아하고 간결한 경여루는 작은 규모에 쓰이는 3량가(三樑架) 가구기법-한옥의 목재 엮기 방식-으로 지었다. 목재는 한국산 소나무가 사용되었다.
동서양의 다른 목구조 기법이 각 설계에 적용된 두 채의 독립주택이 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적절한 긴장감 함께 동화가 된다. 친환경 재료 사용 뿐 아니라 두 주택 모두 매연도 없고 에너지 효율도 높은 지열 난방 방식을 택했다. 유 씨는 손자, 손녀들이 놀러오면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고 바닥이 흙이고 마루라 다칠 염려가 없어 주로 경여루에서 지낸다. 여풍재·경여루에는 환경과의 관계성을 고려한 강승희 건축가의 나무, 사람, 건축에 대한 소신이 깃들었다.

행복한 인연의 사람들
집주인의 집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말도 마’ 라는 관용구가 있는데, 말도 못하게 좋을 땐 음색의 높낮이로 그 정도를 가늠한다. 유 씨의 목소리는 정말 행복하게 들렸다. 목재와 십년을 하루같이 함께해서 그런지 인터뷰 내내 강승희 건축가의 목소리도 나무처럼 따뜻했다. 먼저 설계한 사위 윤 씨의 주택 ‘여여헌(餘餘軒)’과의 인연으로 여풍재와 경여루를 지을 수 있었던 본인은 행복한 건축가란 말을 아낌없이 했다. 여풍재·경여루에서 여(餘), 남김은 비움으로 비롯돼 풍경을 담고 사는 이의 행복을 담는다.

답사 후에 며칠 내내 나고 자란 시골집이 생각난다. 한지 발린 창호지를 타고 달빛 새어 나오듯 가족 간의 비밀 없는 은은한 공간이 그립다. 요즘 아이들은 한옥을 책이나 드라마, 문화재를 통해서나 볼 테지…. 비단 옛 것을 찾는 한국인 뿐 아니라 어느 누가 와도 머무는데 불편함이 없는 우리집 한옥이 조금 더 많이 지어지면 좋겠다는 아련한 마음이 든다. 국내에서 내 집을 짓는 다는 건 삼십대인 본인에게는 아직은 먼 얘기다. 아담해도 좋으니 젊은 층을 위한 내 집 짓기, 이왕이면 따뜻한 목조건축 집짓기의 문턱 낮아지길 기대해본다.
사진 제공: 노바건축사사무소
- 노바건축사무소 강승희 건축가는 나무에 대한 애정과 연구의 결과로 그동안 제주 삼나무테스트하우스(2012 목조건축대전본상), 여현재(2012 경기도 건축문화상 특별상), 장원재사(2011 목조건축대전 대상),여천재(2010 목조건축대전 본상) 등 국내에 굵직한 목조건축을 작업했다. 여풍재(餘風齋)는 풍경, 여연재(餘然齋)는 자연, 여현재(餘賢齋)는 지혜, 여천재(餘天齋) 하늘을 담는 집으로 비움의 건축을 여(餘), 남김으로 집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축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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