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본식물인 나무는 주변 온도와 무관하게 해마다 위로 또 밖으로 생장하는 성질이 있다. 높이 생장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멈추게 되지만 나무의 둘레를 키우는 부피 생장은 나무가 제 생명을 다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는 다른 생물이나 사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죽은 듯 서있는 수백 년 묵은 고목도 저 안으로는 조용히 나이테를 늘려가고 있을 터다.
사람의 몸은 나무와 달라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성장을 멈춰 버린다. 성장 뒤에 곧바로 노화가 뒤따라 인생 전체로 보면 성장하는 시간보다 늙어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하지만 나무는 해마다 제 몸의 둘레를 늘리는 것처럼 정신과 인격의 성장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정치는 그때마다 야무진 다짐과 예방책 강구를 약속하지만 사고에 의한 희생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세월호 선장은 기울어가는 배 위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고, 위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음에도 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데 급급했다. 정치인은 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참사를 교묘히 이용했고, 한 고급 공무원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려다 피해자 가족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 듯, 정신의 부피 생장을 멈춘 어른 사회의 병폐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절망을 충분히 슬퍼하고 기억해야 한다. 미숙한 사회 시스템이 채 높이 생장을 마치지 못해 위험은 늘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 다시 한번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떠나보냈음을 기억하면서, 나이테 많은 사회를 이루어내어 세상의 용골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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