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건축 역사를 쓴 농장 헛간, ‘피어링버리’

건축 / 루스 슬라비드 리포터 / 2022-11-27 21:16:01
영국의 헛간이 변하고 있다. 헛간 고유의 전원적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 감각을 뽐내는 주택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4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피어링버리(Feeringbury farm’ barn) 농장 헛간은 헛간 개조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 피어링버리 농장은 영국 정부에 의해 특별 보호를 받는 역사적 건축을 기록한 리스트에 올라 있다.

 

지난 50년간 농업의 개념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면서 영국에 있는 많은 헛간은 더 이상 저장고로만 쓰지 않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은 수의 헛간이 주거용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헛간 개조를 통한 전원주택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헛간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건축주와 건축가들에게 요구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현실을 극복하는 아이디어들

피어링버리 농장 헛간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헛간 개조를 둘러싼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더불어 독특하고 매력적인 미학을 살리는 데도 성공했다. 팀버프레임으로 지어진 이 헛간은 Grade II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다.(Grade II: 영국 정부에 의해 특별 보호를 받는 역사적 건축을 기록한 리스트) 헛간의 중앙 구조는 1560년 경 세워졌고, 통로는 18세기에 들어 추가되었다.

원래는 초가지붕을 얹은 곳이었겠으나 사람들이 기억해 낼 수도 없는 그 옛날, 철판으로 교체되었다. 헛간을 개조할 당시 지방 정부의 보호 관리 직원들은 굉장히 단호한 입장을 보였는데, 개조 후에도 반드시 산업 건축으로서의 외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천창(天窓)을 추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깊숙한 공간에 작은 창문밖에 없어 어두웠던 헛간에 천창을 달았다면 헛간은 좀 더 밝은 곳이 됐을 것이다.

 

▲ 낡은 가구와 목재는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가진다. 


허드슨 건축사무소는 일조(日照)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헛간 형태에 충실한 외양을 유지하기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우선 철판 지붕을 걷어내고 목구조를 세워 지붕을 따라 이어지는 큰 폴리카보네이트 천창을 지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위에 그물 철망을 덮어 구멍을 통해 햇빛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구멍을 통과한 햇빛은 헛간 안으로 분산되지만 아래에서 볼 때는 지붕이 막힌 것처럼 보인다.

헛간의 외부를 보자면, 기존의 낡은 외부 목재를 검은 사이딩으로 교체했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박공벽에 설치된 목재 프레임의 창에는 전통적인 검은색의 덧문을 달았다. 또 하나의 주요한 아이디어로, 농장을 향해 있던 기존 문을 유리 문으로 바꿔 문으로 햇빛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 오래된 건물의 측면은 검정색 사이딩으로 새롭게 마감했다.

 


오래된 목재가 주는 풍부한 감성의 실내 인테리어

하지만 진정으로 감탄해야 할 것은 실내다. 흔해 빠진 럭셔리 하우스도, 도회적인 하우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목가적이지도 않으며, 더군다나 ‘교외스러운’ 집도 아니다. 꾸미지 않은 듯한 실내는 처음 봤을 땐 그냥 내버려 둔 것처럼 보지만 다시 한번 둘러보면, 아무렇게나 꾸민 듯 재미있는 인테리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 모든 성과는 건축가와 금속 조각을 하는 예술가인 건축주 벤 쿠드-아담스(Ben Coode-Adams) 간의 긴밀한 협업 덕분이다. 최소한의 목구조 수리 작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자 했다. 그다음 큰 과제는 농장 안 다른 곳에 있던 두 개의 원통형 사일로(큰 탑 모양의 곡식 저장고)를 옮겨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곳은 화장실로 쓰고 나머지 한 곳에는 벤이 직접 가져온 오크 나무로 계단을 만들었다. 크고 단단한 계단의 면적은 사일로의 크기와 벤이 사용할 수 있는 톱칼의 수량에 따라 정해졌다.

  

▲ 주변의 나무와 폐목 등을 활용하면서 에너지 총량이 줄이는 건축물이 되는데 집중했다.

 

▲ 오래된 목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성을 자아낸다.


벤은 농장의 일상을 반영한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농장엔 항상 수확할 것들이 넘쳐났고 벤은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들을 소중히 다루는 보통의 농부와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모아둔 목재와 헛간 개조 후 남은 자투리 목재를 가지고 네 개의 벽과 세간을 만들어 오래된 집 구조를 보강하는 충전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충 자른 얼룩투성이의 목재로 부엌 찬장을 만든 것이 한 예다(찬장 손잡이는 샴페인 코르크 마개로 만들었다). 또한 트레일러 뒷면은 패널과 현관문으로, 자투리 목재는 헛간 전체에 유용하게 사용되어 허전한 공간을 채우거나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변신했다. 아무 데나 걸어놓은 듯한 그림은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보다 더 큰 존재감을 주는 인테리어 장식은 보통의 개조로는 얻기 힘든, 오래된 목재가 주는 풍부함이다.

▲ 실내는 낡은 원목의 원형 느낌을 전하기 위해 최대한 절제를 했다.

 


건축주를 위한 건축가

개조한 헛간이 본격적으로 주거 공간으로 쓰이면서 환경성과 지수를 올리고 건축 법규를 만족시켜야 했다. 목재보드는 이미 단열재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재료이며, 우드 칩을 사용하는 보일러를 설치하게 되면 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지역 자원을 사용하게 돼 친환경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친환경적 성과가 단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헛간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총량을 줄이고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쓸모 있게 바꾸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 점에서 피어링버리는 친환경적 성과를 거둔 주택이자 작업장이며 더 나아가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마치 독특한 콜라주 기법을 자랑한 독일의 표현주의 예술가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마지막 작품 ‘Merzbaus’를 연상케 한다. 쿠르트의 작품 세계에서와는 달리 피어링버리에서는 문명화된 삶이 결코 예술을 창조하는 부차적인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피어링버리 헛간은 영국의 인기 있는 TV 시리즈 에 소개되었다. 피어링버리 프로젝트는 일반 고객이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도 독특하다.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차린 건축가 앤서니 허드슨은 집을 멋들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건축주에게 상당 부분의 작업 통제권을 넘겼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업상 협약 또는 계약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이로써 고객과의 마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 친환경적 성과는 헛간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총량을 줄이고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쓸모 있게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흔히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누군가가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를 떠보기 위해 “이 일을 또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어오지만, 벤과 허드슨에게는 소용없는 질문이다. 왜냐면 이들은 또 한 번 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클레이 페스티벌에서 ‘더 그레이트 아이(The Great Eye)’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페스티벌 현장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한 것이다. 설치물의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어 마치 땅 위를 떠다니는 듯 보인다. 확실히 그들은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설치 예술이 아닌 피어링버리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며 개조 작업은 몇 백 년을 이어온 역사의 한 일부분일 뿐이다. 벌써부터 벤은 두 개의 큰 곡물 저장소를 헛간과 이어지는 게스트 룸으로 개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지붕은 디자인 만큼이나 단열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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