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휴 스트레인지’의 집... 집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짓느냐에 달렸다

건축 / 루스 슬라비드 리포터 / 2022-06-07 19:51:16
보잘 것 없는 평범한 거리를 지나다가, 낡은 담장 틈으로 초인종도 노커도 안 달린 문이 하나 나타난다. 겉으로 보이는 거라곤 골 진 시멘트 줄무늬뿐인데 나무 재료들과는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집이 있다.

 

 

이 세상에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꿈의 집’들이 있다. 반면 상황에 맞춘 우연의 산물인 집들도 있다. 

 

영국의 건축가 휴 스트레인지가 런던 남동쪽 뎃포드에 가족과 살기 위해 지은 집은 후자에 속한다. 철저히 설계해 지은 집이긴 하지만 두 가지 우연한 요소로 인해 덕을 봤기 때문이다. 하나는 부지 자체가 정상적이지도 않고 어느 모로 보나 별 볼 일 없는 위치였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말 그대로 횡재랄 수 있는데, 허리케인에 쓰러진 니카라과산 하드우드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불편해야만 창조적 생각을 한다

 

이 집을 꿈의 집이라고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집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건축가 스트레인지는 1층이 고작 23평밖에 안 되는 단층 건물을 지은 이유에 대해 ‘부지도 좋지 않았고 돈도 별로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집이 좀 더 커 보이게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천장은 시원스레 3.2미터 높이로 높였고, 11미터 길이의 공간에 거실과 주방과 작업공간을 배치했으며, 재료를 한정시켜 최대한 심플하게 지었다.

 

 

 


부지가 특이하다는 점도 오히려 장점으로 살렸다. 뎃포드의 다소 쇠퇴한 구역에 있는 도로 옆 가옥을 친구와 공동 매입하여 1층을 점유했고,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수수한 벽돌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 가장자리 구획도 협상을 거쳐 사들였다. 건물을 담장에 바싹 붙여 짓지 않고 살짝 뒤로 빠지게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공간 활용도를 최적화시켰으며 건물 바깥도 분리된 정원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연장된 것 같은 효과를 낳았다.


설계 역시 이보다 더 단순할 순 없을 정도다. 집의 전면부에는 현관에서 이어지는 기다란 방이 위치한다. 그 뒤에 큰 침실이 있고 그 옆에 양쪽으로 문이 달린 욕실이 있으며, 다시 다용도실과 옷장이 있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거기에서 작은 통로를 통해 뒷문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가 나오며 복도 건너편에는 아기 방이 있다. 순환 공간을 최소화한 셈인데 이는 이 집을 더 커 보이게 한 또 하나의 기법이다.
 

 

 


나무의 변화를 즐기기도 버리기도 한다


건물 구조는 강도가 좋은 스위스의 Eurban이라는 제조사에서 들여온 가문비나무로 세웠다. 회사에서 트럭 한 대 분량이 조금 안 되는 목재를 싣고 부지에 도착한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기중기를 사용해 이를 정원 담장 너머로 전부 옮긴 날은 수요일이었다. 구조물이 비교적 가벼웠던 까닭에 별다른 기초공사가 필요 없었고, 지붕은 집 앞쪽의 수직 기둥 위에 얇은 보강 평판을 얹어 마무리했다.


가문비나무는 본디 살짝 노란색을 띠는 목재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톤이 더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목재는 건물 내부에 대부분 노출되어있기 때문에(안쪽에는 단열장치를 했다.) 색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건축가 스트레인지는 롤러로 표면을 흐릿하게 도포했다. 그러자 콘크리트를 부은 바닥의 색깔과도 잘 어울렸다. 스트레인지는 적합한 색감을 위해 런던을 샅샅이 뒤졌다. 이후의 작업은 전문 하청업자가 맡아 했다. 세 번째 요소는 니카라과 하드우드이다. 스트레인지가 사용한 세 가지 목재들은 전부 FSC 인증을 받은 것들로, 처녀림에서 가져온 것들이지만 베어낸 나무는 하나도 없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쓰러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건물 외부의 문설주와 창, 문틀 및 집안의 찬장, 문과 문틀, 책장, 주방 캐비닛은 cedro macho 나무를 썼다. 심지어 침대 머리판까지. 이것은 중간 톤의 갈색 목재로 이미 색이 바래기 시작했는데 특히 빛에 노출된 부분일수록 색이 더 바랬다. 스트레인지는 모든 세부사항을 영국에서 설계한 후, 자신의 설계도를 니카라과로 보내 그곳에서 집의 각 부분들이 거의 완제품에 가깝게 제작되도록 했다. 제작된 창문을 받아 유리만 끼우면 되게끔 말이다.

 

 


스트레인지는 목공작업을 위해 영국의 소목장이를 고용하긴 했으나, 작업의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최대한 완성되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아이 방의 문틀이 소프트우드 구조물 안에 들어가게 하지 않고 표면에 딱 맞도록 하여 재료들끼리의 대비가 더 뚜렷해지게 했다. 또 스트레인지는 집의 어떤 부분에는 베니어판을 쓰려고 했다가, 니카라과에서는 모든 목공제품이 단단한 원목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주방 작업대와 가림판에는 매우 단단하고 무거운 목재인 구아피놀을 썼다. 구아피놀은 자토바 혹은 브라질 체리목이라고도 부르는 목재로 내구성이 탁월하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수려한 테이블은 난시톤(nanciton) 나무의 통판으로 윗면을 얹은 것이다. 테이블에 금간 곳이 있지만 오히려 더 특색 있어 보여 그대로 두었다. 식사용이 아닌 작업용 테이블이므로 금간 틈바구니에 빵 부스러기가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집을 짓기 전에 스트레인지는 건축상 수상 경력이 있는 팬터 허즈피스라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했으며, 아름다운 콘크리트 주물 구조물인 링컨 박물관의 프로젝트 건축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경험이 목재 가옥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플러그와 소켓의 위치도 모두 세심하게 계획하여, 욕실 타일이라든가 책장, 주방 표면 등에 의해 목재 뒤를 지나는 금속의 흔적이 겉으로 보이지 않게끔 마무리했다.

 

 



HARDWOOD가 주는 호사스러운 생활


이 집에 쓰인 유일하게 이질적인 재료는 지붕의 측면에 쓰인 골 진 슬레이트로, 원래 이 지붕에는 식물을 심어 녹색 지붕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주변 건물에서 보기에도 좋았겠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녹색 지붕으로 꾸밀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열회수 장치와 더불어 단열재의 열효율이 높아 집의 보온성도 탁월하다. 현대 가옥이라면 으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집은 두 가지 점에 있어서 놀라움을 제공한다. 첫째, 집 가까이 다가가도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평범한 거리를 가다가, 낡은 담장 틈으로 난, 초인종도 노커도 안 달린 문이 하나 나타난다. 겉으로 보이는 거라곤 골 진 시멘트 줄무늬뿐인데, 그 자체만 보면 다분히 삭막한 느낌이 나지만 다른 재료들과는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새로운 발견이 주는 즐거움에 일단 적응이 됐다면, 하드우드의 풍성함을 깜짝 놀랄 정도로 호사스럽게 살린 집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스트레인지가 집 구석구석 세세한 부분까지 재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고심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부분들은 겉돌았을지도 모른다. 워낙 작은 집이다 보니 그는 이 집에서 영영 살 생각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 속 오아시스 같은 이 집에서 산다는 것은 기발한 착상에 의해 만들어낸 한 점의 예술품 안에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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