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토종 '대추밭백한의원'의 공익적 마음과 지역성 배려 공간
- 세 가지 서사 공간의 조화
신라의 신성이 잠들어 있는 산, 중생의 기도가 불교의 정신에 맞닿아 있는 실존의 공간, 화강암 조각의 불상이 미래불로 부활한 땅. 부처의 나라가 되고자 했던 신라의 정신과 염원이 고스란히 현재화된 수미산이 바로, 경주 남산이다.
경주 ‘치유의 집’은 경주 남산의 북쪽의 금오봉의 산세가 내려앉는 곳에 자리한 건축이다. 정신과 육체의 안식처라는 건축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관조, 명상, 회복을 주제어로 설정하고 목구조 방식에 담아냈다. 세 채의 건물은 전통을 재해석하고 경주 지역성을 반영하면서. 빛의 민감한 개방성과 폐쇄성에 따라 색다른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세 개의 집, 세 가지 서사의 공간
‘치유의 집’은 관조, 명상, 회복이라는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관조의 집’은 개방적 공간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모색했다. 지면보다 낮고 사방이 열린 구조의 내부 공간은 연결된 툇마루에 걸터앉은 후 외부로 시선을 향하면, 일상과 다른 눈높이로 주변의 자연과 경주 남산의 정기를 관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고,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마주앉은 사람들과 저절로 대화로 착상하게 된다.
지붕 구조는 동아시아 전통 목구조의 결구와 공포, 불국사 범영루와 다보탑의 조형성을 한옥공법과 CLT공법 융합한 기술로 디자인을 구사해 결과적으로 ‘떠 있는 무거운 지붕’이라는 전통 건축의 역설적 건축 미학을 전하고 있다.
‘명상의 집’은 공간으로 스며든 빛이 독창적인 건축 구조와 상호작용하면서 내면의 성찰을 위한 공간을 잉태하고 있다. 북측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은 좌우 휜 기둥의 대칭적 공간과 어우러짐으로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딕 아치가 연상되는 내부 공간은 불국사 자하문과 삼괴정의 휜 대들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현대와 전통의 감각이 교차하는 미묘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공간이다. 특히 지하와 지상 공간의 적절한 분리와 결합을 통해 두 개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회복의 집’은 간결한 구조의 높은 천장, 적극적인 채광 조절로 이용객에게 심리적인 평온을 준다. 한의원의 진료실로 쓰이는 이 공간은 효율적 평면 계획으로 편안한 치유 환경에 몰입하게 한다. 이 공간은 전통 한옥보다 월등히 적은 목재를 사용했고 공기를 단축함으로써 한옥의 경제성과 시공성의 재구성한 새로운 유형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분할과 공유의 마당
‘치유의 집’의 외부공간은 앞마당, 중정, 뒷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측의 앞마당은 경주남산과 남천 및 주변 자연환경을 관조하는 외부 공간이다. 200개가 넘는 불상, 불탑과 중생의 염원을 간직한 천년 고도의 신라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앞마당은 절제된 외부 공간으로 경주 남산을 위한 무대가 된다. 대문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중정으로 진입하게 된다. 세 개의 집으로 둘러싸인 중정은 개방적인 앞마당과 달리 아늑한 정취를 호흡하며 정서적 안식처를 느낄 수 있다. 뒷마당은 주차장 등 서비스 공간과 ‘명상의 집’의 미술관 후정이 이어진다.
전통 목조건축의 기술적 혁신을 이루다
‘치유의 집’의 건축적 의미는 지속성, 친환경, 경제적 측면이고 가치는 전통과 혁신을 결합이다. 처마를 활용해 계절별 다른 일사를 조절하고, 맞통풍을 고려한 배치 등 전통 건축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였다. 또한 패시브 건축에 요구되는 단열, 기밀성, 방수 공법을 적용해 한옥 건축의 에너지효율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특히 한옥의 가장 큰 문제점인 지붕 단열 문제는 건식 공법으로 해결하였다.
김재경 건축가의 목재 사용은 전통 목조 건축의 계승이라는 문화적 차원, 탄소 절감이라는 환경적 차원, 재료 사용의 경제성 등의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결과이다. 국내 목재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서까래와 비구조재에 육송을 사용해 재료의 국산화를 꾀하면서 면밀한 구조설계로 전통식 한옥보다 약 20%, 현대식 한옥보다 약 10%의 재료 절감을 이루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경제성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는 점에서 ‘치유의 집’은 ‘획일화되고, 비싸고, 불편하다’라는 한옥이 가진 선입견을 지우는 데 일조했다.
김 건축가에게 목재는 동아시아 건축의 역사와 감성이 담긴 재료이면서 인간의 감각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고,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인간적인 건축 재료이다. 특히 그는 목재의 단순한 사용 확대보다 국산 목재의 품질 향상과 활용성 다변화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선행되기 바랐다. 또한 국산 목재는 강도, 치수 안정성, 내구성 등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어 건축적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구조 성능과 내화 성능, 가공성에 대한 기초 R&D의 축적이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합판이나 CLT를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기술(CNC 라우팅, 로보틱 암 가공 등)과 결합해, 곡면 구조나 복합적인 접합 디테일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한 건축가의 고민과 집념에 한정하기보다는, 우리 건축계가 지속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와의 어울림 건축
‘치유의 집’은 지역 사회와의 교감,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또한 경주에서 5대 째 이어온 한의원의 계승과 치유의 맥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조의 집’은 경주 시민들을 위한 휴식, 요가, 참선과 같은 자기 치유의 개방 공간으로서의 역할 할 것이고, ‘명상의 집’은 지방에 부족한 전시 공간으로 제공되어 경주 예술가를 위한 전용 미술관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특별히 10월 말에 열리는 경주 APEC 부대 공간으로 선정된 것도 의미를 더한다.
‘치유의 집’은 토종 대추밭백한의원의 공익적 마음과 지역성에 보편성, 기능성, 혁신성이 뜻을 같이했다. 한옥의 정서와 기술을 바탕으로 목조건축의 패러다임을 증명한 ‘치유의 집’은, 전통과 현대의 융합, 지역 문화의 반영 그리고 사회와의 열린 소통이 함축된 지속가능한 건축이면서 미래 건축의 시그널이기에 충분하다.
· 치유의 집 (경상북도 경주시 강변로 60)
· 설계: 김재경(김재경건축연구소),임일중(홍은건축사사무소)
· 시공 : 스튜가하우스
· 사진: 노경, Roh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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