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목재건축대전’ 수상작, 제주 스테이 <조차>... 탄화된 바다에 이는 찰나의 질감

건축 / 김수정 기자 / 2025-09-02 23:11:43
세 개의 매스, 세 개의 시선
묵직하고 어두운 목재 공감각 재현
삼나무를 태워 만든 숯탄화목 외장

 

무심한 여행이 감각의 수행이 되는 경우가 있다. 공간을 에워싼 바다 풍경이 생각의 언어를 멈추게 하거나, 공간 속의 사물과 기운이 몸의 언어를 멈추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어차피 자연과 물질의 경계와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먹의 세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제주의 북쪽 바다와 맞닿은 조천 마을은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에 의해 바다의 극적인 변화와 풍경을 품고 있다. 이 땅에 접한 바다는 바위와 방파제로 둘러싸인 탓에 호수처럼 잔잔하게 물이 차올랐을 때는 거울처럼 평화로운 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다가, 물이 빠지면 바다 속 지형들이 드러나며 검고 거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 개의 매스, 세 개의 시선 



‘조차’라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는 뜻과 밀물과 썰물 때의 수위의 차이라는 두 가지의 뜻을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스테이 ‘조차’는 조수 간만의 차이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들을 ‘찰나의 순간’으로 기억할 수 있는 장소에 여러 가지 건축적 장치를 통해 바다와 하늘, 시간과 계절, 빛과 그림자를 극적으로 담아낸 공간 건축이다. 날 것이 산재한 마을 모서리에 검은 매스 건물이 덤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 개로 나누어진 매스는 각각이 다양한 볼륨을 가지며 다른 시선 높이로 바다를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현관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침실로 들어서면 낮고 길게 찢어진 창 너머에는 엉성하게 쌓인 현무암 돌담 사이로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고, 좁은 계단을 올라 다락으로 올라가면 먼 바다의 수평선과 하늘을 마주하는, 마치 비밀의 공간에 칩거하게 된다. 두 번째 매스에서는 바닥보다 낮은 욕조에 앉아 낮은 시선으로 거친 바다의 질감을 관찰하고 천장에는 달빛에 반사된 반짝이는 파도 너울의 잔물결을 느끼면서 몸은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마지막 공간인 거실과 주방에서는 마당과 돌담, 바다와 마을을 중첩시켜 안온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반대편으로는 높은 천창에서 벽을 타고 내려오는 햇빛과 바닥 창을 통해 스며드는 자연의 조도가 그리는 회화적 경험으로 이끈다.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복도는 매스 사이의 틈을 통해 건물 주변 정원의 초록을 실내로 끌어들여 시선의 환기를 꾀한다.

묵직하고 어두운 목재 공간

‘조차’에 쓰인 재료는 모두 어두운 검회색이다. 물과 바람에 씻기며 유난히 더 검은 색감을 발현하는 주변의 암반과 오래된 마을에서 느껴지는 낮은 채도의 분위기를 그대로 둘 수도 있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의 흐름이 건축을 감싸며 공간의 주제가 되도록 조율한 흔적이 역력하다.

 


외장은 삼나무를 태워 만든 숯탄화목이다. 나무가 불에 타면서 만들어낸 거친 질감은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외형이다. 그 위로 발현한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여운은 이 재료가 가진 특장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최상의 재료임을 확인한다. 외부의 숯탄화목은 자외선과 빗물에 조율되면서 고유의 검은색은 지워지는 대신 회갈색의 농도와 중첩되면서 '조차' 고유의 지역 색으로 도치되어 있다. 목재니까 가능한 변화이면서 동시에 품격 높은 고재로의 전환이었다.

 

 


바다의 풍경과 흐르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실내 공간 또한 숯탄화목 질감의 어두운 마감재로 둘러 쌓여있다. 흩어진 장소에 놓인 모든 재료들은 각각의 질감을 최대한 드러낸다. 얇고 길게 찢어진 개구부를 통해 벽과 천장을 타고 들어오는 빛은 다양한 질감의 재료들과 부딪히며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공간을 장식하는 소품들은 저마다의 체형과 직감으로 손님을 맞는다. 벽체과 천장에는 마로 만든 패브릭을 붙이고 도장하여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었고, 가구에 사용한 두꺼운 뉴송 원목은 브러쉬 처리를 통해 목재의 질감을 최대한 드러냈다. 실내에 사용된 철평석이나 현무암, 화강석 또한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가공하여 사용하였다.

섬세한 사물 공간의 시간 



공간 경험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중심에는 다양한 목재 마감재와 가구로 이루어진 거실 평상이 놓여 있다. 평상은 공예 작가와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상판 위에는 강화도 왕골로 만든 화문석이 깔려 있고 그 중심에 놓인 원목 덮개를 열면 ‘찰나함’이라는 원목 상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상자는 비치 원목으로 제작된 다단함으로 공예 작가 이재하의 작품이다. 상자 안에는 공간의 의미를 담은 소품들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어, 마치 시간의 층위를 하나씩 여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평상에서 마주하는 차 한 잔의 시간은 제주 바다 풍경과 아우러져 무위의 세계로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낮의 바다는 생의 현장이지만 밤의 바다는 무한한 사색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실존의 자신을 경험하는 것은 공(空)의 세계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조차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 섬세한 감성과 깊이 있는 감각의 세계로 이끄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당을 나와 마을 주변을 배회하면서 지랩의 ‘조차’를 다시 둘러보았다. 바다를 가로질러 보았고, 또한 마을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서도 보았다. 목재의 숙성 빛을 알아채게 되고, 건물의 무취하고 덤덤한 외모를 직격한다. 그리고 다시 공간의 내부를 연상하면서 겉과 속의 일체감을 재구성해본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만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것이 존재감이고 자존심이라 여긴다. 하지만 ‘조차’에서는 그 논리가 쉬이 깨진다. 누구든지 하나의 마음과 태도를 이루고 같은 곳, 같은 감각을 공유하게 된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된다. 조차의 바다는 여전히 넘실댄다. 

 


·조차 (제주시 조천읍조천리 3095-2)
·설계: (주)지랩
·시공: (주)지랩
·사진 : 문성주, mo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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