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가장 좋아하는’, ‘가장 싫어하는’ 따위로 시작되는 질문이다.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데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만 꼽기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반사적으로 ‘벚나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벚나무를 좋아 한다니 목재로써 애호하는 느낌이 들지만 실은 벚나무의 꽃인 벚꽃만을 편애한다.
벚꽃에 얽힌 최초의 추억은 꼬마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맘때 우리 가족은 막 나오기 시작한 참외를 한 봉지 사서 팔달산에 올라가곤 했다. 입에 넣은 참외도 달고 벚꽃을 보는 눈도 달았다. 대학 시절에 벚꽃은 곧 중간고사였다.
그래도 하루쯤은 만사를 제치고 여의도에 꽃구경을 갔었다.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남자친구와, 어느 해는 친구들과 갔고, 늦은 밤 혼자 나와서 보기도 했다. 작년에는 소개팅에서처음 만난 남자와 머쓱하게 꽃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와 보든 봄볕 아래 팝콘처럼 핀 벚꽃은 배부르고 흐뭇했다. 꽃잎은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어룽어룽 고왔다. 그렇게 폭죽 같은 며칠이 지나고 불그스름한 이파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걸로 나의 봄은 끝이었다.
내 눈에 이리 예쁜 꽃도 어떤 사람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얼마 전 한 남자가 윤중로의 벚나무를 몰래 베다가 경찰에 적발됐다고 한다. 줄곧 벚꽃 축제 대신 무궁화 축제를 열자고 주장했다는 이 남자는 사람들이 벚꽃을 즐기는 게 못마땅했었는지 벚나무를 네 그루나 베어내고 그 자리에 무궁화를 심으려 했다.
벚나무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어디 이 남자뿐일까. 해방 직후 벚나무는 일재의 잔재라는 이유로 수없이 베어졌고, 지금도 벚꽃은 왜색 논쟁의 단골 주제로 입길에 오른다. 벚나무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자면,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가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져 가장 사랑 받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도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제주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런 자잘한 사실들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국경 없이 피는 꽃을 우리 것이니 남의 것이니 하는 논쟁은 부질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벚꽃은 올해도 환하게 피었다. 어떠한 관심도 바라지 않고 조용히 피어 있다가 가야할 때 사라질 것이다. 벚꽃이 진 자리에 사람들의 말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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