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예언자, 그의 이름은 이상배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무명의 존재로 남기로 했다.
그에겐 이름이 없다. 이름을 가지려고 한 적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작품이 끝나면 이름 대신 배를 그려 넣는다. 작은 돛이 달린 배. 부서지기도 쉬운 그 배를 타고 그는 평생 길이 아닌 곳을 향한 모험을 감행해왔다. ‘이상’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나와 있는 편한 길이 아닐 테니까. 우리가 그를, 혹은 그가 우리를 이제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와 달리 우리는 닦여 있는 길을 간신히 좇아가는 형편이니 말이다.
햇살과 나뭇잎 그늘이 적절히 얼룩진 집 안 정원의 오솔길은 화단과 밭이 수시로 침범하고 있었으며, 돌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풀과 함께 서있다. 날 따뜻할 때 주로 쓰는 집안의 헛간 작업실 벽은 담쟁이가 뚫고 들어와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붙잡을 것이 없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사람과 자연의 공간이 분리 되지 않은 이 정도 모호함은 견뎌야 한다. 앞으로 이 집에서 발견할 시간과 공간의 모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마음의 길
한 번은 반대로 가기 시작하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몇 바퀴 굴러 옷은 다 헤지고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때 고개를 딱 들었는데 한 사람이 길 위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더란다. ‘아, 나는 길로 안 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는 자신이 디딘 땅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서는 자유도 외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십 년을 피한 군대를 갔다. ‘군대’ 빼고 딱히 그가 대로변으로 나온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가 평범한 행렬에서 빠진 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혼자 책이나 읽고 말지, 하면서 한 학기 남은 학교를 그만 뒀다. 연필 꽤나 휘둘렀고, 칼도 꽤나 휘둘렀지만, 알아봐주는 이가 없었다. “이 학생은 창의력이 부족합니다.”라고 쓰인 선생님의 의견란을 보고 가슴 한 구석 항상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던 어린 학생은 길을 벗어나는 데 온 창의력을 쏟기로 한 모양이다.
남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으니 여기 저기 많이 기웃거리게 되었다. 돌은 만져본 적도 없는 이가 벼루 만드는 곳에서 자신이 깎은 나무 몇 개 보여주고 작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팀장’이 되어 온갖 화려한 모양의 벼루를 만들었다. 인사동에서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역시 골동품 수요가 많아 생나무를 깎아 ‘지다이’를 내서 골동품으로 팔았다. 상판에 조각이 있는 테이블을 만들기도 했는데 ‘눈’이 필요한 그의 테이블은 영 인기가 없었다.
김포 고촌 신곡리에 터를 잡고 작업에만 몰두한 시절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나무를 깎고 컵받침도 만들었다. 그 땐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그린벨트에 있던 작업장은 강제로 철거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목아박물관에서는 분업으로 만들어진 스기 불상들을 조립하는 작업을 했다. 누구보다 조각을 잘하는 그가 따로 따로 만들어진 얼굴과 광배, 팔, 옷 주름을 붙이면서 성에 찼을 리 없다. 그 땐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작은 나무로 부처님을 만들었다. 그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가진 부처님이 아니라 성난 금강역사였다.
가진 재능이 있으니 굶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는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집, 충주 산척면으로 내려온 건 91년도. 친구들에게서 너무 멀리 갔다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곳은 문득 그리워진 고향의 변두리였다. 서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의 손에 들린 건 팔리지 않은 작품과 지금은 곰팡이가 슨 ‘인사동 디오게네스’ 민병산의 글씨 정도가 아니었을까. 내려와서 오래된 집을 조금 손보고 나무 심고, 풀 키우며 살았다. 아원에 빗, 컵받침, 반지 등 작은 소품을 팔면서, 그리고 팔리지 않는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오래전부터 웅얼거리던 내면―외부에서 올 수도 있는―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만의 접속
작은 옥수수 밭과 토마토 담장을 지나면 있는 오래 된 외양간은 그의 작업 기지면서 고촌 작업장의 분위기를 잇는 곳이다. 반지, 도장 같은 작은 작품부터, 사람보다 큰 목어까지 여름이면 온도가 치솟는 이 방안에 있는 나무들은 카프카의 까만 시선을 받으며 저마다 단련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건, ‘사로잡힘’이다. 서로 물리고, 물려 있는 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접속”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길이 아닌 곳에서 길 위의 자유를 알아버린 그는 세계는 혼자서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나를 붙잡는 것, 그것을 알아채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자유다. 관계를 빼고 그의 작품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두 개의 다리만 가진 의자는 사람(의 형상)이 앉음으로써만 네 발로 설 수 있다. 그가 만든 건 돌로 된 것이든 나무로 된 것이든 모두 부둥켜안고 있다. 그의 접속이 단순한 상징계의 구조나 틀을 넘어서는 건 그가 타자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생을 영위하는 것. 타자에게 붙잡혀 있기에, 타자를 품고 있기에 자유만을 추구하던 세계는 닫혔지만, 그보다 더 큰 세계가 열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로 통하는 그의 정신은 쉬운 형상으로도 나타난다. 사람들이 그를 민속공예가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돌에 새겨진 친근한 도깨비 친구들, 새치름한 미륵불, 얼굴을 묻은 흑고니, 두루뭉술한 거북이, 그리고 작은 작품들에 새겨진 개구리와 맨드라미를 보면 그저 흐뭇하다. 보이지 않는 사건, 혹은 그의 길을 재현하는 것은 언제나 비끄러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일상과 끊임없이 관계 맺는 것이다. 반지나 그릇, 문진 같은 일상용품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붙잡을 수 있도록 단단하고 예민한 감각을 길러준다.
접속은 그의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을 추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들기 전, 그는 기다린다. 기다림 끝에 저절로 움직이는 손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사과밭 옆 빈집에 살 때 그가 만들었다는 뻥뻥 뚫린 나무 조각이라든지 군대에서 보초 설 때 만든 명아주 조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오직 ‘접속’ 뿐이다. 같은 걸 만드는 건 힘이 들고, 작업 팽개치고 어디 놀러라도 갈라면 몸이 아프다. 접속이 가능한 매개자로 지명된 삶을 그는 벗어날 수 없나보다.
눈 먼 예언자
안방에는 인물 그림이 있다. 펜으로 거칠게 그린 그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며 눈은 찌그러진 왼쪽 귀를 향해 반 쯤 세워졌다. 왼쪽 볼에서는 근육이 아닌 어떤 생명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이 양성 인간은 미의 화신 베아트리체가 아니었다. 찌그러진 바로 그다. 토마스 엘리엇이 그린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예언이 저주가 되는, 창조력이 ‘창의력 부족’이 되는 배척당하는 눈 먼 예언자, 접속을 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외로운 사람, 외로운 그에게 힘이 되었던 건, 위대한 시인의 책에 나오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눈 먼 예언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민감하다. 초록색 창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나무 조각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부인으로부터 들었다. 뭔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저 좋았던 작품이었다. 어느 날 무심코 바닥에 드러누워 쳐다본 조각에서 역동감이 느껴졌다. 남편한테 그 평을 들려주었더니 “새싹인데 당연하지.”라는 성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싹 같은 팔이 들려 있기는 했지만 그 아래 ‘에너지체(?)’는 지식에 의존하는 감상법을 버린 무심한 순간에 보였던 것이다. “으라쌰”
그는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할 새가 없다. ‘봉순이’도 그렇다. 호랑이처럼 내려온 코 옆으로 작게 새겨진 눈은 사람들처럼 앞을 보지 못한다. 어정쩡하게 ‘위’를 응시하고 있다. 우연한 디스플레이의 결과겠지만 그 위에는 접속의 흔적을 조각조각 새겨 넣은 작품이 걸려 있다. 형이상학 조각들은 나무색 그대로인 것들도 있고, 골동품 제조 경력을 이용해 ‘연대’를 넣은 것도 있다. 나무색과 재색은 맞물려 조우하며 말씀을 담고 있다. 봉순이는 눈으로 있는 힘껏 접속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 그는 벽을 덮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그가 여태 그려왔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로잡힘이 모두 담겨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해왔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작업이다. 컵받침에도 흔적은 있지만 작은 조각 하나로는 해내지 못할 무수한 반복들을 이제는 하나로 펼쳐낼 때가 된 것이다. 정방형의 작은 나무판 조각들은 함께 거대해질 터다. 흡사 바람개비 모양을 하고 바깥으로 퍼져가는 기운을 담은 나무판들이 그의 칠을 한 달 째 기다리고 있다. 그는 칠을 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칠을 마친 작품들이 너른 벽에 걸리게 될 날도. 언제 올지는 몰라도 곧 오게 될 것이라는 걸 그는 안다.
이름은 이상배
그는 집을 거의 고치지 않았다. 그저 안채 마루에 나무를 대서 벽과 창을 만들고 작은 문 하나 내고 벽에 종이를 바른 게 다다. 산에서 날아와 비쭉 솟아버린 벚나무도 그대로 둔다. 막 떠난 박새 가족의 흔적은 아직도 우체통에 남아 있다. 토마토풀이 고꾸라지지 않도록 잡아준 것은 볼썽사나운 플라스틱도, 쇳덩어리도 아닌 나무다. 대문 바깥에는 돌을 깎아 만든, 여전히 사용하는데 눈이 필요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울퉁불퉁해도 아침에 차 마실 자리를 내어준다.
집 안의 마당은 고니와 거북이, 아이같은 조각들이 지키고 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독은 귀신을 쫓을 터다. 닭은 알을 낳고, 개는 짖는다. 오르내리며 빛이 있고 없는 방들을 지난다. 봉순이는 위를 쳐다보고, 문진은 에너지를 뿜는다. 장롱과 문갑은 잿빛의 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기원을 알 수 없어서, 내용을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러운 건 작품들만이 아니다.
앞뒤를 매기지도 않는 과거의 일들을 듣고 있노라면 30년 전 인사동에만 디오게네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틀에 박힌 격식을 차리지 않는 그는 인터뷰 때 입고 있는 옷도 작업복인지 일상복인지 모호했다. 제련된 세련됨 같은 것이 없다. 원초적이고 종교적인 형상을 자꾸만 칼로 파내게 되는 것이, 그래서 반역사적인 감정과 형상을 건드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작품으로 일체의 양식과 의식이 있기 전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도래할 것으로 가져오는 이상배는 칼을 든 디오게네스 같다.
그는 스스로 노를 젓지 않았다. 풍랑을 만나면 그대로 맞았고, 바다가 잠잠해지면 그대로 흘러갔다. 가난하라고 하면 가난했고, 돈을 벌라고 하면 돈을 벌었다. 나무를 깎으라면 깎고, 돌을 쪼라면 쪼았다. 알고 보면 그는 없는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너무 밝아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을 좇아간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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