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흙, 지대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밟을 일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정한 땅과 공생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무언가를 애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에 여러 부산물들과 물질들이 혼재되어있는 지대에서 진정한 땅, 흙에 대한 애도의 자세를 취할 수 있을지…
우리는 다른 생명체, 존재와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각자의 뼈를 지니고 뼈를 새기고 뼈를 접촉시킬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두발이 온전히 땅과 맞닿을 때 비로소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애도의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 류정하 <덮인 발자취>_ 도자, 92.5×135×43cm, 2024. / |
나는 본래 신체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분절된 뼈의 조각들을 외부의 세계로 추출해 때로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신체의 모습이나 신체 내부, 외부의 작동을 작업으로 표현한다. 뼈는 단단하게 신체의 주축을 이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근육과 인대의 '붙잡음' 없이는 힘없이 무너진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의 뼈를 남기고 각기 다른 형태의 기억을 안고 있으며, 다른 객체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임을 가늠케 한다.
<흙을 애도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인간의 뼈가 아닌, 타 생명체인 동물의 뼈를 모티브로 작업해 보았다. 땅의 내부, 외부의 경계 속 존재하는 생명을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신체, 뼈로 제시한다. 이는 진정한 땅을 밟고 있는 대상체가 인간이 아닌 자연물, 동물, 생물이기에 인간의 뼈로 작업하기 보다는 동물의 뼈에 주목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이번엔 동물의 뼈 중 돼지의 등 뼈에서 영감을 받게 되었다. 과거에 뉴스에서 돼지 열병이 유행하자, 사육 중인 돼지를 매몰 처분해 그것들을 땅에 묻는 여러 영상, 사진들을 보았다. 여러 전염병들이 성행하게 된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명체들이 고통받는 것과 처리방식 마저도 인간 중심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땅은 모든 것을 안고 가지만 어떠한 내색 없이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감히 내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땅의 모든 수고를 이해하고 감내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흙에서 건져 올린 뼈를 통해 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주목하고 담담히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뼈는 우리가 공유하는 삶의 물리적이고 상징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과거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흙이 함축하는, 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지반 위로 꺼내듯이 날 것인 뼈를 통해 인류, 혹은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애도하려 한다.
우리의 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려가며 결국엔 땅 밑으로 잠식될 것이다. 땅은 그것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며 차곡차곡 진정한 땅의 부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땅 속 잠재되어 있는 묻혀진 뼈들을 다시 꺼내 흙가래를 한 줄 한 줄 쌓아 올려가며 형태를 만들고 땅 위로 드러내려 한다.
당연시 여기며 밟았던 땅을 두들겨보고 땅과 나를 동일시 여기며 애도의 자세를 취해본다. 아스팔트, 시멘트, 맨홀 등 여러 부산물들과 도구들에 속박되어 있는 땅 위를 발끝으로, 등과 등을 맞대고 느낀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정적인 자세로.
글 : 류정하 도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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