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돌아간다. 다시 흙의 세상으로... 심다은 <0>

아트 / 편집부 / 2024-06-06 11:44:45

 

바스러졌다. 나의 손톱과 머리카락, 주름진 피부와 느슨한 근육이. 온몸 구석구석에 뻗은 핏줄과 모든 걸 버텨낼 것만 같던 단단한 뼈가 바스러졌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부서져 내리던 신체는 먼지처럼 흩날리다 이내 차곡차곡 쌓였다.

올해가 시작될 무렵 아버지의 고향을 향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구불거리는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오래된 집들이 호젓이 서 있다. 500년을 살아온 관향, 풍산 심 씨의 집성촌에는 먼저 떠나간 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가득하다. 마당에는 닭과 개와 염소와 황소가 잠자던 터가 있고, 할머니 따라 나가면 새끼 염소 안고 젖병을 물렸던 오래된 우리가 남아있다. 한때 우리와 함께였던, 돌고 돌아 끝끝내 마주하게 될 그 땅을 한 아름 빌려왔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땅을 땀 흘리며 퍼다가 작업실로 옮겼다.

 

▲ <0>_ 임실군에서 수집한 흙, 94x46x36.5cm, 2024.

이 세상 모든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매일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다 보면 그런 건 금방 잊어버리지만 결국 다 흙이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아주 많은 유리창도, 바닥에 깔린 우레탄과 그 위에 놓인 플라스틱 조형물도,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나와 가족의 유약한 행복도 결국은 흙이 되어버린다. 한때 나의 일부였던 것. 도려낸 장기와 함께 웃던 사람들. 발끝에 이별이 걸터앉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또 다른 이별이 찾아온다. 자욱한 아픔 속에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건 딱 이만큼의 크기뿐이다.

바스러진 몸과 마음을 모아 꾹꾹 눌러 담는다. 잠시 동안만 머무를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갈 우리, 영원히 함께할 그 땅을 마음속에 묻는다. 아마도 우리는 원자 여행 중일 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여행일 거다.

글 : 심다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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