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애도하다... 박지원 <땅의 것들, us earth>

아트 / 편집부 / 2024-06-06 11:33:55
▲ <땅의 것들, us earth>, 가변설치, 조합토, 2024

 

흙 혹은 땅을 애도하며 흙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마음으로 흙을 마주하는 나는 한없이 무력해지고 겸손을 넘어 초라해진다. 땅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더 내려놓고 솔직해지고, 나 역시 자연에, 흙에 연동하여 태어나고 살아가다 사그라들 존재라는 것을 새기는 것 아닐까.

흙으로 흙을 애도하다니

작품이라는 이름은 제쳐두고 그저 어떤 행위를 지속하고 나열해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지다 던져놓은 흙 조각들을 다시 바라보고 이어보며 생명의 것들을 건져 올려 본다. 결국 흙을 애도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나를 비롯한 생명의 것들을 다시 알아차려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내 작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존 작업은 생명성, 생성, 혹은 삶의 에너지에 대한 주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이거나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마음가짐이기보다는 내 삶에 있어서의 여러 욕망과 새로운 가능성과 나서야 할 길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관심이었다.

 

 

 


‘애도’를 마음에 품는 순간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여야 했다. 전자는 끝없이 펼쳐질 삶의 망망대해를 품는 것이라면, 후자는 시작과 끝을 알고 우리가 그저 어떤 순환 고리의 한순간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삶과 죽음을 연속체로써, 다르지 않게 여기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땅에 대한 애도’ 혹은 ‘흙에 대한 애도’라는 광활한 주제에 걸맞게 거창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해쳐놓고 날 것 상태의 물질들에 슬며시 내 존재를 얹어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작업에 있어서 작위적인 행위, 즉 나를 내려놓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흙의 물성에 기 대 보기도 하고 내 의지대로만 펼쳐낼 수 없는 어떤 방법적 장치를 설정하여 관계성 속에서 풀어내왔다. 하지만 결국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역시, 어떤 방법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어느 시점에 다다르거나 깨달음이 와 내 마음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직면하며 좌절했다.

‘애도’라는 있어 보이는(?) 주제에 고민도 않고 뛰어든 나 자신의 오만함을 알았고 지금 내 시점에서 진정한 ‘애도’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애도는 또 뭐랴. 이런저런 방황하는 파편들이 정신없게 펼쳐진 작업실이 내 현실이었고 좋든 싫든 나는 그것들을 다시 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 주어진 땅을 더 자유롭게 헤집어 놓지도 못하는 나의 테두리를 자각하며.

 

글: 박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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