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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것들, us earth>, 가변설치, 조합토, 2024 |
흙 혹은 땅을 애도하며 흙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마음으로 흙을 마주하는 나는 한없이 무력해지고 겸손을 넘어 초라해진다. 땅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더 내려놓고 솔직해지고, 나 역시 자연에, 흙에 연동하여 태어나고 살아가다 사그라들 존재라는 것을 새기는 것 아닐까.
흙으로 흙을 애도하다니
작품이라는 이름은 제쳐두고 그저 어떤 행위를 지속하고 나열해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지다 던져놓은 흙 조각들을 다시 바라보고 이어보며 생명의 것들을 건져 올려 본다. 결국 흙을 애도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나를 비롯한 생명의 것들을 다시 알아차려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내 작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존 작업은 생명성, 생성, 혹은 삶의 에너지에 대한 주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이거나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마음가짐이기보다는 내 삶에 있어서의 여러 욕망과 새로운 가능성과 나서야 할 길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관심이었다.
작업에 있어서 작위적인 행위, 즉 나를 내려놓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흙의 물성에 기 대 보기도 하고 내 의지대로만 펼쳐낼 수 없는 어떤 방법적 장치를 설정하여 관계성 속에서 풀어내왔다. 하지만 결국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역시, 어떤 방법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어느 시점에 다다르거나 깨달음이 와 내 마음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직면하며 좌절했다.
‘애도’라는 있어 보이는(?) 주제에 고민도 않고 뛰어든 나 자신의 오만함을 알았고 지금 내 시점에서 진정한 ‘애도’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애도는 또 뭐랴. 이런저런 방황하는 파편들이 정신없게 펼쳐진 작업실이 내 현실이었고 좋든 싫든 나는 그것들을 다시 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 주어진 땅을 더 자유롭게 헤집어 놓지도 못하는 나의 테두리를 자각하며.
글: 박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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