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의 오늘을 만나는 귀한 시간
포정의 마음이 다시 소중한 이유
▲ 2022년 우수공예품 선정작 |
포정해우는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에 등장하는 우화이다. 전국시대 양나라에 살던 소를 잘 잡는 포정이란 자가 있었다.(포정이란 요리사, 해우란 소를 잡는다는 뜻)
어느 날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문혜군(文惠君)이 포정에게 소를 잡게 했다. 포정이 소를 다루는 솜씨가 운율을 타고 고기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자, 문혜공은 감탄하고 말았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사람의 기술이 어찌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그러자 포정이 대답했다.
“저는 손끝의 재주를 이용해 소를 다루지 않고 정신만으로 고기를 발라냅니다. 처음에는 제 눈에 소가 들어와 어쩔 줄 몰랐지만,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잡이 포정의 칼날은 늘 막 간 것처럼 날이 서 있다. 소의 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에 난 빈틈에 칼을 넣어 살만 자르기 때문이다.
▲ 2022년 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전경 그래픽 |
장자의 포정해우 이야기를 전하는 까닭은 사물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신기(神技)를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포정이 소의 신체 구조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수십년 동안 수시로 칼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포정이 칼을 다룰 때 넉넉한 공간을 볼 수 있은 것은, 그가 대상에 대해 완전한 이해와 그에 따른 숙련의 기술이 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2022년 12월 8일, 공예계의 큰 축제인 ‘공예트렌드페어’가 열렸다. 수많은 공예가들이 한 해 동안 갈고닦은 기술과 마음을 전하는 귀한 축제이다. 신예 공예가에게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리이고, 기성의 작가는 심도를 내보이는, 공예가들의 소중한 자리이다.
전통과 근대에 묶여 있던 한국의 공예가 장르의 다양화와 신물질을 만나면서 자기 변신에 당황하고 또 미술적 공예, 디자인적 공예가 기성 공예와 충돌, 융합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있다.
이를 때일수록 공예의 기본기를 제대로 가다듬어 미술과 디자인의 틈새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져가야 한다. 어울릴 것과 분리해야 할 것을 잘 분별해 공예의 진면목이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본다.
▲〈2022 올해의 공예상〉 창작부문 수상 김혜정 작가 작품_ '성숙의 계절 Twists and Turns – 심피 Carpel 心皮 시리즈' |
현대 공예는 소잡이 포정이 자신의 눈에서 사라진 소를 다시 만난 지점은 단순한 칼잡이가 아닌, 경지에 도달한 신기의 포정 그만이 감지한 도(道)의 자리가 아닐까 싶다.
올해도 부지런히 달려온 공예가들 중에서 포정의 마음에 접신한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공예는 상대에 다가가기 전에 스스로 이룬 자리에 뿌리 내리는 것이다.
기술과 감각의 경지가 도에 이르는 것이 그리 별거일까? 진리는 아주 단순함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포정의 칼끝에 배인 도의 흔적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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