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를 상징하는 의자
문학적 매개체로써의 의자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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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원 작 '구깃' |
자리(seating)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space), 몸이나 물건이 어떤 변화를 겪고 난 후 남은 흔적(tracks),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지정한 곳(place)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의자는 ‘곳’에 한정한 실체적 기물이다. 하지만 의자는 도구의 물성만큼이나 상징적 의미도 다분하다. 의자라는 단순한 사용처 이면에는 ‘아버지의 의자’와 같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물질성과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의자의 다중적 기능과 의미
55년 동안 한 남자를 사랑한 의자 수리공 여인의 이야기의 기술한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 <의자 고치는 여인>, 버려진 의자처럼 자신의 삶이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가구점 사장의 딸, 물질만능주의 가구점 사장, 도서관의 의자에 마음 뺏긴 젊은 남자, 고가의 의자에 과소비 하는 남편을 이해 못하는 아내의 이야기 등의 4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연극 <의자는 잘 못 없다>, 고립된 섬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권태와 외로움 그리고 망상과 폭력성 그 후의 다시 공허를 연기한 연극 <의자들> 등은 의자의 문학적 상징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소설집 <인간의자>는 의자의 공간에 숨어든 주인공이 타인의 공간에 침투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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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준성 작 'Structualism' |
“제 전문은 의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만든 의자는 아무리 어려운 주문을 한 손님이라도 무조건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많은 거래처에서 저를 잘 봐주고 좋은 일만 안겨주었습니다. ‘좋은 일’이라 하면 등받이나 팔걸이에 어려운 조각을 넣는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주문이 있기도 하고, 쿠션의 종류나 각 부분의 치수 등에 세세한 취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특별 주문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보 직공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민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고심하면 할수록 의자가 완성되었을 때 얻는 유쾌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이 커집니다. 감히 비유하자면, 그 느낌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에 견주어야 할 정도입니다.” - 기능적 의자
“드디어 완성된 의자를 보고 저는 이전까지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넋을 놓고 볼 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의자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네 개가 한 세트로 구성된 의자 중 하나를 해가 잘 드는 마루로 가지고 나가서 편안히 앉아봤습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부드럽게 몸을 감싸주며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쿠션의 탄력, 굳이 염색하지 않은 회색빛 원단을 이어붙인 가죽의 감촉, 적당한 경사를 유지하여 가만히 등을 받쳐주는 꽉 찬 등받이,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볼록 솟아 있는 양측의 팔걸이, 그 모든 것이 신기한 조화를 이루며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마치 ‘안락함’이라는 단어가 형태를 갖춰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습니다.” - 정서적 의자
“저는 서둘러 네 개의 의자 중 가장 완벽하게 완성된 팔걸이의자 하나를 모조리 해체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의자를 저의 이상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알맞은 모습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팔걸이의자였는데, 앉는 부분이 바닥에 닿을 법한 지점까지 가죽이 둘려 있고, 등받이나 팔걸이가 상당히 두꺼웠습니다. 그 안에 사람이 한 명 숨어 있어도 바깥에서는 절대 모를 정도로 커다란 동굴이 있는 셈이었지요. 물론 의자 안에는 튼튼한 나무틀과 많은 스프링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들을 적절히 손봐서 사람이 앉는 부분에 무릎을 집어넣고 등받이 안에 상반신을 끼워서 사람이 정확히 의자 형상으로 앉으면 그 속에 숨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 행동 목적성 의자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제가 행한 이 기묘한 행위의 첫 번째 목적은 사람들이 없는 틈에 의자에서 빠져나와 호텔 안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안에 사람이 숨어 있다니, 그런 멍청한 짓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저는 그림자처럼 자유자재로 이 방 저 방을 헤집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질 즈음이면 의자 속 비밀 공간으로 도망쳐서 숨죽이고 그들이 도둑을 찾는 멍청한 행동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죠.” - 욕망의 의자
한 소설에서 하나의 의자가 인간의 필요 욕망에 의해 완전히 다른 기능과 용도로 해체,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의자라는 도구가 한 남자의 목적에 의해 자신의 인생 골격을 재구성하는 사물로, 그 역할과 목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문학성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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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환 작 '스툴' |
자리에서 의자, 의자에서 자리로
자리(seating)가 사람의 역사를 기록하는 은유의 무형이라면, 그것을 실체적으로 구현한 사물이 바로 의자(chair)다. 하지만 좌식 문화로 이어진 한국인에게 의자는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행하게도 우리는 세계적 의자나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나 공예가를 가지지 못했다.
의자의 구조, 형태, 재료, 기술, 디자인 등은 서양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궁색한 제안일 수도 있겠으나 실용성으로부터 잉태한 서양식 의자보다, 방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일어나 의자로 향하는 단계는 좀 더 치밀한 일상성과 문학성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의자는 그 기능에 따라 스툴, 벤치, 소파 등으로 나누지만 그 역할은 모두 몸을 의지하는 기능에 종속된다. 하지만 오브제 의자는 기능의 제약에서 벗어나 사물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작가의 세계관, 정서, 물질성, 구조, 형태에 있어 자유분방함을 표현할 수 있다. 자리(seating)에서 이어지는 의자만의 독특한 인문적 정서와 입체 구조는 현대 가구가 예술성에 접근하는 좁지만 각별한 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떠난 의자에는 쓸쓸한 공허가 내려앉는다. 누군가의 무거운 몸을 수용하고, 공간을 구성하고, 일상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심리적 정황까지 일구는 의자는 현대 공예가와 디자이너에게 사물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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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가구 '서안'(국립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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