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두려운 이유는 사물이 사라지고 서사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맹아는 빛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것은 단지 시각과 시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에너지 그 자체로서 장대한 스케일이다. 빛은 반사와 굴절, 조도와 휘도라는 물리적 원리에 의해 사물을 밝히고 생명을 잉태하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 중 유리는 빛의 속성과 이미지를 수용하는 특별한 재료다. 유리를 조형하는 작가는 무작위적이고 어지러운 속성의 유리 질료에 빛의 스펙트럼을 조율하고 투명의 질량을 가다듬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그런 이유로 유리작가 박성훈이 펼치는 색과 조형의 밸런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박성훈의 작품 <보이드 void> 시리즈는 투명한 색의 창연과 육각의 질량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의 사물을 흡수하고 다시 투영하는 순환의 과정에 보여준다. 최고의 블로잉 기법이 뿜어내는 형태와 색의 일체감은 절대적 기술이 절대적 감각으로 전이된 결과다. 그가 구사하는 제작 기술은 깊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법 그 자체가 작품이다.
두께의 질량, 육각의 프리즘, 색의 완고함이 결정체를 이룬 박성훈의 작품은 자기만의 투쟁의 역사가 서려 있다. 사적인 딜레마와 콤플렉스, 자기 연민과 궁핍했던 정신적 결함들이 빛에 굴절되고 형태에 녹아들어 있다. 그는 유리 작업을 통해서 탈출구를 모색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더욱 기술의 힘에 집착했다. 적정한 묘사를 벗어나 무한한 자유로움으로 다가가기 위해 두터운 질감과 빛의 성형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작품의 안과 밖은 허공이 감싸고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지키는 유리 두께에 녹아든 빛의 향연은 작가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내부 보이드는 색을 품고, 외부 보이드는 색이 투과하는 무한 공간이다. 유리의 투명성은 무채색의 속절없는 통과가 아니라, 색을 채우고 비우면서 공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색의 저장고이다. 박성훈이 구사하는 푸름과 초록, 붉음과 노랑, 먹과 흰빛 등은 별의 탄생 빛에서 유추했고 그 빛을 따라 작가의 세계관이 팽창한다.
예술가에게 응시와 유희는 매일의 호흡과 같다. 늘 깨어있는 감각과 지성으로 거듭 새로워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성훈이 조각한 유리 작업은 부단한 응시와 유희의 결과이면서 고단한 몸이 빚은 사물이다. 빛을 성형해 별의 탄생을 계시하는 유리 조형은 작가의 삶을 가다듬고 생의 에너지를 부추긴다.
유리작가 박성훈의 지속적인 노동과 숙련된 기술이 색의 결정체가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시선을 가까이할수록 빛의 관문이 열리면서 미지의 색이 다층적 입체로 펼쳐진다. 끝이 처음과 맞닿아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육각형의 다면체 세계는 색의 순환과 함께 유리의 몸과 정신이 되어 광활한 우주의 빛을 투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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