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경운동가의 폐목 예술...미국 구성 아티스트 ‘미셸 피터슨-알반도즈’

아트 / 오예슬 기자 / 2023-04-16 14:28:05

 

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 아티스트 미셸 피터슨-알반도즈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이곳은 제가 1994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라스 마노스 갤러리(Las Manos Gallery)입니다. 한 가지 퀴즈를 내볼까요? 지금 보고 계신 제 작품들은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폐목입니다. 폐목이 있는 곳이라면 저는 어디든 달려갑니다. 저에겐 아주 신나는 일이거든요. 제가 사는 시카고만 하더라도 골목마다 버려진 목재가 많고, 또 철거된 건축 자재만 취급하는 폐목장도 있거든요. 이곳을 흔히 덤스터(dumpster)라고 부르는데, 제 별명이 덤스터 다이버(dumpster diver)랍니다. 쉽게 말하면 쓰레기장에 뛰어들 정도로 폐목에 미쳤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동네방네 발로 뛰면서 모은 폐목을, 재료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다듬어 패널 위에 차곡차곡 붙여 나가죠. 그게 제가 하는 구성입니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제가 폐목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 본 푸에르토리코의 열대우림과 코네티컷의 숲은 저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지요. 후에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폐목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이 녀석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이만큼 값진 게 없더라고요. 이렇게 훌륭한 재료를 쓰레기로 내버린다니. 낭비가 따로 없는 거죠. 여러분들은 쉽게 이해하시기 어렵겠지만, 저는 폐목에서 우주의 힘을 느낀답니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힘. 하지만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요. 잠자고 있는 우리 의식을 깨워 자연과 재접속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폐목을 선택했습니다. 폐목으로 예술을 하는 것이 그 우주의 힘에 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공부했고 또 사랑했던 그림도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제가 폐목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건물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달려갑니다.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하죠. 저를 모르는 철거 인부가 없을 정도예요. 건축 자재를 그냥 가져가기가 뭐해서 항상 맥주 여섯 팩을 뇌물로 사갑니다. 이렇게 얻어 온 자재를 스튜디오에 가져와 뒷면을 한 겹 벗겨냅니다. 앞면은 목재의 역사를 보여주는 페인트가 칠해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살립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작업대로 옮겨 띠톱이나 작은 톱으로 조각을 냅니다.

수십 개 박스에 담긴 폐목 조각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많은 목재가 버려지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 엄청난 양의 폐목 조각이 자연과 인간 사이 끊어진 연결고리를 뜻하는 것만 같아 슬퍼지기도 합니다. 이런, 제가 또 감상에 젖었군요. 작업 과정을 계속 말씀드리면, 이제 큰 패널 위에 접착제를 조금씩 발라가며 폐목 조각을 붙여 나갑니다. 패널을 모두 채우면 구성이 완성되는 거죠. 

 

 

 


제 작품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우리는 자연과 거부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은 제 마음이 느껴지시는지요. 하지만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메시지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있죠. 하얀 벽에 작품을 걸어둠으로써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 더 정확히 말하면 재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관람객과 작은 폐목 사이에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단 몇 초라도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여러분 눈에 들어온 폐목 조각을 1분간 들여다보세요. 이렇게 여러분처럼 많은 사람이 폐목을 섬세한 눈길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감성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벌써 갤러리 투어를 마칠 시간이네요. 제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제 갤러리에 오시면 지금보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기술로 인한 정보 과부하가 그 주제입니다. 사실 저도 제가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랑스러운 폐목들이 저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거든요. 이 사실이 저를 황홀하게 합니다. 혹시 모르죠. 제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걸지도. 오늘, 그 길을 짧게나마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Las Manos Gallery 제공

: 미셸 피터슨-알반도즈(Michell Peterson-Albandoz)
폐목으로 구성 작품을 선보이는 아티스트이자 시카고에 소재한 라스 마노스 갤러리 대표.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Escuela de Artes Plasticas과 포르투갈 리스본 ar.co, 그리고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환경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폐목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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