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 띠를 따라 흐르는 공간, 공류산방(空流山房)

건축 / 송은정 기자 / 2024-07-10 14:39:15
공류산방은 17개의 꼭지점으로 완성된 집이다. 삼각형의 공간들은 시작과 끝이 무한히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한다.

 

우거진 참나무 숲을 지나 마을에 가까워지자 도로 쪽으로 깊게 경사진 박공지붕을 얹은 주택 한 채가 보인다. 겨울만해도 헐벗은 나무집이었던 것이 스타코로 마감한 흰색 외벽과 징크 지붕으로 마무리됐다.

비례의 미학이 주는 안정감

밖에서 바라본 주택의 외관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제각각이다. 양쪽의 경사도가 다른 박공지붕을 두 개의 볼륨으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마을 초입에서 맞닥뜨린 집의 첫인상은 하나의 매스로 이루어진 2층 건물이지만, 실은 그 반대편으로 또 다른 작은 건물이 숨겨져 있다. 여기에 지붕을 뚫고 올라온 듯한 3개의 세콰이어 큐브가 더해졌다. 이는 종이접기처럼 면과 면이 만나고 엇갈리면서 다양한 각도를 연출하는데, 자칫 과해 보일 수 형태는 건축주가 유독 마음에 들어 했던 ‘비례감’덕에 균형을 잃지 않았다.

독특하되 안정감을 유지한 외관 디자인은 내부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어 일관되게 이어진다. 유난히 길게 뻗은 박공지붕의 단면이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공간들이 그러하다. 가령, 두 자녀의 방과 거실, 현관 옆 작은 공간 모두 공통적으로 벽의 한 면이 경사져 있다. “번잡한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관념적 공간을 구상했던 스무숲건축사무소 홍진희 소장의 생각이 디자인을 통해 세련되게 구현된 것이다. 삼각형이 주는 형태적 안정감, 경사면에 설치한 천창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된다.  

 

 


순환의 시작, 거실과 방을 잇는 고리 동선


공류산방은 ‘공간이 흐르는 집’이라는 뜻 그대로‘순환’하는 공간이다. 순환의 대상은 집안을 채우는 어떤 기운일 수도, 혹은 가족 간의 허물없는 소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집의 개별 공간들이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계단과 복도, 문을 통해‘층과 층’, ‘거실과 방’, 그리고 ‘방과 방’으로 계속해서 연결된다는 것이다.

순환의 시작점은 2층 높이의 세콰이어 큐브 속에 감춰진 현관이다. 일반적으로 현관문은 건물 밖에서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게끔 드러나 있지만, 이 집의 경우에는 정반대다. 큐브 정면의 오른편에 설치된 슬라이딩 원목문은 보호색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 마냥 세콰이어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묵직한 문을 열어젖히자 현관과 거실 사이를 잇는 짧은 통로가 나타난다. 기능적으로는 신변을 정리하는 공간이지만, 이곳에 머무는 잠시 동안 감각을 곧추세우게 된다. 특히, 밤이 그렇다. 어둑한 통로 너머의 실내 불빛은 마치 동굴의 입구로 스며드는 빛줄기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동시에 바깥에서 실내로 진입했음을 은유적으로 일러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1층 내부는 의외로 단출하다. 주방과 거실, 방 하나가 공간의 전부다. 남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창이 거실의 두 면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산 중턱에 집이 위치한 덕분에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별다른 방해 없이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안락한 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집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겠지만, 이렇듯 최소한의 기능 이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낼 때 집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순환의 종착지, 3층 다락 발코니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자작나무 합판으로 짠 책장이 난간을 대신하고 있는 복도가 나온다. 1층 거실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이 복도를 따라가면 화장실과 안방, 아들 방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또 다른 복도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 세콰이어 큐브와 연결되어 있는 아들 방 역시 두 개의 입구 겸 출구를 가지고 있어 2층 안에서도 독립된 동선을 갖는다.

복도의 끝에는 딸의 침실인 3층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여 있는데, 공간의 진짜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상단을 삼각형으로 재치 있게 모양을 낸 방문을 열자 천창이 달린 전형적인 다락이다. 그런데 안쪽의 침대 뒤편으로 문이 하나 더 있다. 무심코 열자 앞이 개방된 발코니가 대뜸 나타난다. 예기치 못한 반전이다.

 


공기주머니로 채워진 공간

공류산방을 ‘아기자기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공간을 둘러보는 내내 아기자기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특유의 감성과 섬세함 때문일 것이다.

집안 곳곳은 ‘공기주머니’같은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침실과 화장실, 거실처럼 기본적인 생활공간을 제외한 자투리 장소들이다. 현관문 바로 옆 1평 남짓한 공간, 1층 할아버지 방과 이어진 적삼목 툇마루, 아들 방과 통하는 세콰이어 큐브, 2층 복도의 책장으로 된 난간 모두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음’으로써 일상에 숨구멍을 틔어준다. 상상해보건대 툇마루에서는 오고가는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간접조명이나 벽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조명을 두루 활용한 것 역시 집안을 아늑하게 보이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 적삼목 데크와 브라질 오크로 된 주방선반, 천장과 계단 등 내부에 두루 적용된 나무의 질감은 포근한 감성을 더해준다.

공류산방이 그리는 순환의 공간은 다름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좋은 기운과 소통의지가 유영하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으니, 결국은 이곳에서 살아갈 건축주 가족만이 그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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