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로 이어진 티크주택

건축 / 송은정 기자 / 2024-07-10 15:01:08
깎아내리듯 아래로 쏟아지는 경사진 언덕 중간 즈음 ‘까사 플로탄타’가 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여러 개의 기둥이 집을 받치고 있는 까닭이다.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건축주인 고든 나홈 가족이 선택한 곳은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코스타리카의 항구도시 푼타레나스의 어느 언덕배기였다. 광활한 바다와 우거진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지만 문제는 아찔하리만큼 경사진 부지. 천혜의 뷰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건축주 가족은 산호세에 있는 건축사무소 벤하민 가르시아 삭세를 찾아간다.

난관에 봉착한 이들의 답답함을 해소해 줄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바로 집을 공중으로 붕 띄우자는 것. 최종적으로 완공된 까사 플로탄타는 필로티 구조, 즉 기둥이 몸체를 받치고 있는 형태지만 사실 이는 처음 의도에서 180도 바뀐 모습이다. 애초의 계획은 언덕 언저리 안쪽의 흙을 파낸 뒤 옹벽을 세워 건물을 올리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건축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 집의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계획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부지가 지닌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둥을 세워 집을 대지로부터 띄움으로써 건물 아래로 주변의 동식물, 개울이 언덕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필로티 구조를 선택하면서 시공비용 또한 절감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공간

까사 플로탄타는 일반적인 주택의 디자인과는 사뭇 다르다. 주거의 안락함보다는 바깥경관을 아무런 방해 없이 감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설계이기 때문이다. 처음 건축주의 의뢰를 받고 현장 답사를 나간 건축가는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한다. 경사도로 인해 공간의 일부분에서만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검토 끝에 독립된 건물 3동을 나란히 배치하되, 각 공간의 돌출 간격을 조정해 시야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계단처럼 층층이 다른 높낮이를 가짐으로써 그 사이로 막힘없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 집의 장점을 더욱 배가시킬 재밌는 아이디어가 덧붙여졌다. 따로 떨어진 세 건물이 ‘다리’를 통해 이어지는 것이다. 건물의 전면부에 설치된 테라스는 휴식공간이자 지그재그 형태의 다리가 되어 각 공간으로 이동하는 복도 역할을 한다. 보통 건물 내부의 복도가 공간 이동이나 전시의 용도로 제한적으로 쓰인 것과 비교해보면 까사 플로탄타의 테라스는 새로운 공간감을 선사한다. 별다른 유리창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우거진 나무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한 쾌감이 있다.  

 

 

건물의 후면 역시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픈된 전면 테라스와는 달리 블라인드를친 듯 대나무로 벽을 세운 프라이빗한 복도를 만들어 거주자가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했다. 대낮에는 대나무 틈새로 중미의 뜨거운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패턴이 복도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 같은 전후면의 순환복도 덕분에 집은 자연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정글 속 집이 살아남는 법

단박에 느껴지는 까사 플로탄타 특유의 청량감은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 요소와 소재에서 구현된다. 건물의 내외부 마감에는 지역 안에서 생산된 티크와 대나무가 사용됐다. 묵직한 무게감의 티크 사이에서 외부 복도의 벽면, 창틀, 소품 등에 쓰인 가벼운 질감의 대나무는 더욱 빛을 발한다. 집밖에 설치된 대나무관 샤워기로는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 간편하게 몸을 씻을 수 있도록 했다. 무더운 중미의 날씨에는 제격인 아이템이다.

 

 

 


밖으로 길게 뻗은 돌출 지붕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종일 내리쬐는 햇볕으로부터 실내를 보호해준다. 건물 전면부의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한 슬라이딩 도어와 지붕 아래의 환기창, 대나무 복도 등 개방형의 설계구조 역시 자연통풍만으로도 충분히 실내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주변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필로티 구조를 선택했던 것처럼 까사 플로탄타에는 친환경적 방식으로 집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태양열로 물을 덥히고, 효율성이 높은 LED 조명을 사용하는 것 역시같은 맥락에서다.

 


까사 플로탄타를 본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묻는다. 이리도 집이 활짝 열려 있으면 정글의 곤충들이 마구잡이로 침입하지 않겠느냐고. 건축가의 답은 이렇다. “곤충이며 바람, 공기 자연의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이 집을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외부의 영향으로 부터장막을 치고 원천봉쇄하는 대신, 오히려 과감히 열어두는 것. 어쩌면 정글 같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적용 가능한 생존법이라는 생각이 번뜩 스친다. 

 


사진 Andres Garcia Lach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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