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생활을 위해 조각가가 직접 지은 전원주택

건축 / 전상희 기자 / 2022-02-01 20:57:25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의 한적한 시골에는 개 대신 말이 지키는 집이 하나 있다. 말은 개처럼 짓지 않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말은 조각품이기 때문이다.

 

 

조각가가 지은 집이라고 알고 찾아갔으니 조각품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말 조각품은 조각가의 것이 아니다. “저 작품은 후배 녀석 거에요. 서울엔 아무래도 놓을 곳도 없고 하니 여기에 두라고 했죠. 지금은 형님이 주말에 내려와 살고 계시지만 그 전에는 제가 여기서 살았거든요. 지금은 양평 작업실에서 주로 생활하지만요.” 말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집도 자신의 것이 아니란다. 그럼 바로 이 집과는 어떤 관계일까?

“제가 다 디자인했어요. 원하는 디자인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설계사무소에 의뢰해 도면을 만들고 경량목구조로 집을 짓는 후배가 시공을 해줬죠. 원래 여기에 살다가 양평으로 옮기게 되면서 형이 안 그래도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주말을 보내고 싶었다며 집을 하나 지어달라고 하더라구요. 어쩌겠어요, 형님이 시키니까 해야지(웃음).” 

 


바로 그는 조각가 박승모이다. 한 형상에 알루미늄 와이어를 촘촘히 돌려 감거나 얇은 철망을 여러 개 겹쳐 생기는 명암으로 작업하는 등 독특한 형태의 조각품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다. 서울, 부산, 뉴욕, 타이페이, 베이징에서 전시를 했고 6월엔 런던에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상봉 패션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적도 있다.

수많은 철제 작업을 하며 그렇게 알루미늄과 철제의 물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그가 지은 집은 다름 아닌 목조주택이다. “저는 건축의 경우 노출 콘크리트로 표현되는 질감을 좋아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공간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삭막하고 답답할 것 같달까요? 왠지 집엔 나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레 목조주택을 짓게 됐어요.”

집의 골조와 외장은 모두 캐나다산 적삼목을 사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마침 찾아온 봄과 적삼목은 서로를 더욱 멋져보이게 했다. 모습도 지방의 경치 좋다는 동네마다 어색하게 들어앉은 다른 전원주택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도로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집으로 진입하는 길에서 보이는 것은 사각의 벽면이다. 하지만 말 조각품을 지나 정면에서 집을 바라보면 왼쪽의 주거하는 공간과 오른쪽의 창고 공간 간의 높낮이와 각도를 조절해 변화감을 줬다. 공간의 사이에는 약 6m 높이의 천장을 덮고 긴 테이블을 놓았다. 여름이나 겨울에 편안하게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2중 구조의 특색 있는 지붕 모양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단층 주택인데 천고가 높다. 주거 공간과 창고 공간 모두. “형이 반대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우겼어요. 박스형의 공간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기도 했고 깊고 풍부한 공간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디스플레이에요. 그 작품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달라져요. 그래서 조각가는 늘 작품과 함께 디스플레이할 공간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민해야 하죠. 그게 또 재미가 있어요. 학부 생활 마치고 설계로 전공을 돌릴까도 잠깐 고민했을 정도로요.” 

 


대신 실제 생활하는 공간은 아담한 사이즈로 설계했다. 주말에만 내려와 편히 쉬다 가려면 굳이 넓을 필요가 없어서다. 높은 천장으로 허전해보일 수 있는 주방 위쪽으로는 복층 공간을 만들었다.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사다리를 끌어내려 한 걸음씩 올라가면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아늑했던 다락방의 추억이 떠오르는 공간이 나온다. 박 작가의 예상과 달리 이곳을 제일 즐겨 찾는 이는 형이었다.

“주말마다 다락방에 올라가 책 한 권씩은 꼭 읽어요. 여기서 엎드려 책도 보고 그러다 잠도 들곤 합니다. 어찌나 잠이 잘 오는지(웃음). 서울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주말마다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여유를 갖게 된 지금의 일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꼭 어린 아이처럼 주말이 기다려져요. 동생이 멋진 집을 지어줘서 아주 만족스럽고 고맙죠.”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하는 형 박승렬 씨의 말이다.



집이 바뀌면 가족도 바뀐다

실내는 미송 루바로 둘러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원목의 느낌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남향으로 낸 통창 밖으로 박승렬·홍기순 씨 부부가 사다 심어놓은 소나무와 잡아 온 물고기를 키우는 연못이 보인다. 마을에서의 진입로 방향으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창을 냈다.

시골은 도시보다 소음이 없어서 다른 집의 사정이 더 잘 들리고 잘 보인다. 건축은 배려라는 게 박 작가의 생각이다. 집의 방향과 창을 정방향에서 조금씩 각도를 튼 이유도 그래서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배려하고 내 공간을 배려하기 위해 가족들의 주된 활동이 이뤄지는 곳은 뒤뜰로 할 수 있도록 뒤쪽에 넓게 잔디를 깔았다. 

 

잔디는 주말마다 내려오는 가족들이면 누구나 심어야 한다. 부산에 사시는 어머니와 울산에 사시는 누나도 자주 올라와 잔디를 심는 소일거리를 하며 즐거워하신다고. 4남 1녀의 형제들은 예전에 가족끼리 모일 때마다 돌아가면서 각자 사는 아파트로 가곤 했는데 이제는 모두 이곳으로 온다. 어디로 모이라는 말이 없어도 자연스레 이곳을 찾아 낮에는 풀을 심고 저녁에는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 집을 짓고 가족 관계가 뭔지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고 박 작가는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사실 박 작가가 집을 짓고 제일 걱정했던 건 형과 형수가 자주 내려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전화를 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여주 집에 내려와 있다고 말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단다. 설계를 할 당시에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아무래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심미적인 요소를 많이 고려하고 싶었는데 직접 살 사람인 형과 형수의 취향을 모두 살펴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서로의 다른 취향을 조율해가면서 지금의 집을 지었다.  

 

집은 아직 미완성 단계다. 창고 공간은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벽난로가 들어올 자리도 아직 비어있다. 뒤뜰의 잔디는 아직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박 작가의 가족들은 이 집으로 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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