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집 ➀ 기능을 담은 책꽂이... 영종도 북하우스에서 책꽂이는 수납장이, 집은 카페가 된다.
애서가(愛書家)인 이들의 꿈은 넓은 서재를 갖거나 높은 책장을 집 안에 설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걱정이 앞선다. 커다란 책장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답답하지는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그 많은 공간은 과연 다 쓸 수 있을까. 건축가 김동희는 이 답을 영종도 북하우스에서 풀어냈다. 답답하지 않고, 오래도록 만족하며,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쓸모 있게
북하우스의 건축주 홍금표 씨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장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처음부터 집에 대한 주제가 명확했다. 건축주가 아닌 건축가의 고민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 책장이 있는 집을 원하는 추세인데, 과연 그 공간이 오래도록 사용될 수 있을까. 김동희 소장은 시간이 지나도 책꽂이가 집 안의 한 부분으로 사용되길 바랐다.
“이 집의 책꽂이는 책만 넣지 않아요. 수납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폭도 기존 책장보다 조금 깊게 만들었어요. 소품을 진열하거나 아이들 장난감을 둘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이죠. 작은 집에서는 수납이 매우 중요합니다. 북하우스는 국민주택 평균규모인 25평 정도로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에요. 지하실도 없고요. 대신 책장으로 부족한 수납 기능을 더했습니다. 나중에 책을 읽는 일이 적어진다 하더라도 커다란 책장이 다른 기능을 담당하며 집 안에서 계속해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책장의 폭은 28cm로, 일반적으로 18cm 폭의 책장을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꽤 깊은 편이었다. 그만큼 면적을 차지하게 된다. 좁은 집에서는 1㎜의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건축가는 폭에 대해 고민했다. 건축주와 의논 끝에 28cm 폭의 책장을 설치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덩치는 컸지만, 깊이감이 생겨 답답함을 상쇄시켰다. 또한, 책장 뒤에 창문이 있어 막히지 않고 탁 트인 인상을 주었다. 책장 뒤에서는 빛이 들어와 실내를 아늑하게 밝혔다.
구조목으로 튼튼하게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뒤틀리고 색이 변한다. 책장은 무거운 책을 장시간 꽂아두기 때문에 나무에 변형이 오기 쉽다. 특히 책이 닿지 않는 부분이 더 빨리 건조되기 때문에 덜 마른 나무를 설치하면 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북하우스의 책장은 집의 구조목 스터드를 사용해 내구성을 강화했다. 커다란 목재가 집 안의 한쪽을 차지하자 의외의 효과도 생겼다. 집의 천장이 높다 보니 난방에 대해 걱정했는데, 나무가 어느 정도 습도를 조절하며 냉난방에 도움을 줬을 것이다. 물론 단열을 꼼꼼히 하고, 내부 방습지를 바른 덕분이겠지만, 나무의 존재도 무시할 수는 없다.
책장이 있는 거실에는 넓은 고재 테이블을 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북하우스의 거실은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 소장은 카페 같은 집을 만들고 싶었다. 거실이 북카페처럼 쓰일 수 있도록 부엌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고 조명도 은은하게 달았다.
“옛날 마을에서는 동네마다 반상회가 있었어요. 집에 모여서 다과도 하고, 동네가 돌아가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요. 저는 북하우스 또한 마을의 공동체를 모으는 공간으로, 그 중심에 책꽂이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바람대로 건축주는 자주 이웃들을 초대하여 북하우스에서 모임을 갖는다. 책꽂이는 정자나무처럼 한쪽 벽을 지키고 있다. 책꽂이는 책을 담는 기능에서 나아가 여러 역할을 하며 북하우스의 한 부분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다.
사진 KDDH, 송정근
책 읽는 집 ➁ 책장이 안내하는 계단... 가족이 모이는 공간에는 TV 대신 항상 책이 펼쳐져 있다.
주말의 풍경은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 앉아 TV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노대동 집에는 TV 대신 책 읽는 소리,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들은 책장에 싸여 있는 계단식 거실에 모여 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스킵플로어 책장
노대동 책 읽는 집의 건축주 박종영 씨의 가족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책 읽기를 즐긴다.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가족인 만큼 새로 짓는 집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책꽂이였다. 단독주택에 대한 바람은 건축도서로까지 이어졌다. 가족과 유경건축의 인연을 맺어준 것도 책이었다. 여러 건축책을 읽던 중 유경건축이 쓴 어린이 건축책을 본 후 설계를 의뢰하기로 한 것이다.
설계를 맡은 권경은 소장은 가족들이 책으로 더욱 돈독해지고 일상의 구석구석을 책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노대하우스에서 중요한 점은 다양한 방식의 책 읽기가 가능하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을 위한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스킵플로어 형식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공간은 고립되어 있거나 과시하기 위한 곳이 아닌 가족들의 동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책장을 1층부터 다락까지 이어지도록 하여 가족실을 더욱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이죠.”
권 소장은 책장이 벽을 차지하여 공간에 위압감을 주기보다, 계단을 따라 각 구역에 책장을 배치함으로써 높낮이를 달리하여 답답한 느낌을 없앴다. 책장은 낮은 1층의 가족실에서 시작해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 냈다. 가족실은 1층 진입레벨보다 살짝 낮으며, 피아노와 식탁, 벤치를 두어 독서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계단은 여기에서 1층 복도와 계단, 2층 방 그리고 다락까지 이어져 있다. 단에 따라 막혀 있는 책장과 양쪽이 뚫린 책장이 교차하며 시각적으로 아늑한 공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냈다.
계단의 즐거움
노대하우스에서는 높다란 책꽂이가 가지고 있는 비경제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책 넣는 공간을 분산하여 설치했기 때문에 책장의 높이는 대부분 낮았다. 만약 손이 닿지 않는다면 계단을 올라가 꺼내면 된다. 책꽂이는 어느 칸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를 띠게 됐다. 낭비하는 칸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아이들도 쉽게 책을 꺼낼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친다. 큰 아이는 복도 끝 창문가를 좋아하고, 둘째에게는 다락이 최고의 도서관이다. 어떨 때는 온 가족이 계단에 나란히 앉아 함께 책을 읽으며 대화한다. 가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책 읽기를 한다. 편평한 바닥에서는 자세가 한정적이지만, 계단에서는 등을 기대기도 하고 팔을 괴기도 하며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건축가는 계단이 주는 자유로움을 통해 좀 더 재밌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길 바랐다.
“계단 자체가 걸터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됩니다. 중간의 계단참에는 창문이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어 어느 정도 공간이 있어요. 여기서도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프로젝터로 영화를 함께 감상할 수도 있고요.”
책장을 따라 흐르는 계단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다른 층이어도 같은 공간에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한편으로는 영역을 구분하여 가족 모두가 편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가족들은 따로 또 같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만의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
사진 진효숙
책 읽는 집 ➂ 책과 계단과 미끄럼틀... 무한궤도하우스에는 가족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한 집 안에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에이디모베의 이재혁 소장은 책꽂이를 축으로 무한한 동선을 그리고 있는 공간을 완성하며 가족의 이상을 한 집에 담았다. 공간이 순환되자 네 식구의 영역은 하나의 띠를 형성했다. 가족은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며 집 안에서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집
전원주택을 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주정균 씨 부부는 탁 트인 전원에서 살면 잔소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1년간의 고심 끝에 네 식구는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다. 가족이 터를 잡은 곳은 양평이다. 첫 전원주택이라는 사실에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들떠 있었다. 식구들이 바라는 점은 분명했다. 부부와 아이들은 각자 집에 대한 요구사항을 내놓았다. 이걸 어떻게 한 집에 담나 싶었지만, 건축가는 이를 보란 듯이 반영했다.
“아빠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넓은 계단을, 엄마는 주방과 연결된 놀이방과 테라스를, 딸은 지붕 밑 다락방을, 아들은 미끄럼틀을 원했습니다. 계단, 다락, 미끄럼틀, 놀이방을 하나의 선상에 놓아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각 구역은 자연스럽게 궤도를 이루더라고요. 이 집의 이름 무한궤도하우스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무한궤도하우스는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동선을 지니고 있다. 1층은 계단과 부엌, 거실이 있으며 2층에는 각 방이 있다. 1층과 2층을 오가는 공간은 총 두 군데다. 계단과 미끄럼틀. 아이들은 미끄럼틀로 내려와 언제든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 2층으로 간다.
현관에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거실 공간과 책장이 놓인 계단이 있다. 계단은 이 집의 중심이며, 거실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도서관이면서, 계단 앞에 놓인 TV로 함께 모여 영화를 보기도 하고, 중간중간 마련된 너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위쪽으로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중간 부분에는 의자 또는 책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은 책 읽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추억을 담은 책꽂이
책장은 계단의 한 축을 담당하며 가족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북향으로 면해 있는 계단 한쪽을 붙박이 책장으로 만들었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책장과 미끄럼틀이 합쳐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이자 열람실이 됐다. 아이들은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간 뒤 미끄럼틀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책장이 있다. 자유롭게 위아래 층을 오가다가도 계단에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아이들의 책 읽기는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이뤄진다.
정균 씨 가족은 무한궤도하우스에 오기 전, 10여 개의 책장을 가지고 있었다. 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양의 책은 물론이고 책장 또한 처치 곤란의 상태에 놓였다. 다 버리자니 거기에 담긴 추억이 아깝고, 가져가자니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재혁 소장은 기존의 것을 활용한 큰 붙박이 책장을 제안했다.
“책꽂이는 목조건축의 구조목을 수직부재로 사용하고, 수평부재는 미송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했던 책장을 설치했습니다. 추억을 담은 책장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사진 에이디모베
책 읽는 집 ➃ 품 안의 도서관... 중동 품안의 집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펼쳐진다.
거리와 애정은 비례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 책도 가까이 있어야 애정이 생기는 법이다. 책 읽는 환경은 책과 생활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용인 중동의 품안의 집은 책이 언제나 가족의 생활과 함께한다. 책이 둘러싼 공간은 가족의 품처럼 건강하고 따뜻하다.
집의 중심이 된 책장
건축주 이병옥 씨는 부모님의 품 안에서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3대가 사는 집을 의뢰했다. 동시에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책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거실에 책장이 설치되어 있길 바랐다.
설계를 맡은 유타건축사사무소의 김창균 소장은 책장이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한쪽 벽면에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하부장은 의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테이블을 놓아 거실에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거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건축가는 맞은편에 게스트룸을 마련했다. 책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는 공간을 게스트룸으로 대체한 것이다.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여 문을 완전히 젖히면 방은 거실로 확장됐다. 손님이 오면 문을 닫아 공간을 구분할 수 있었다.
“책꽂이 뒤로는 미끄럼틀 계단을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마구 뛰어놀다가도 언제든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죠.” 건축가의 의도처럼 놀이 공간과 학습공간이 한 영역에 들어오면서 아이에게는 독서도 놀이처럼 재미있고 가깝게 느껴졌다. 또한 아이가 있는 공간과 가까운 곳에 부엌을 마련해 엄마가 요리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처럼 품안의 집에서는 책장이 공간의 중심이자 생활의 중심이다.
“게스트룸, 놀이 공간, 엄마의 주방 그리고 책장이 있는 거실, 이 모든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아이 혼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자체가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책이 녹아들도록 했어요.”
거실이 다른 공간과 조화를 이루자, 집 안은 모든 곳이 도서관이 됐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2층 방, 다락, 마당 툇마루 등 집안 곳곳에서 책을 본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품안의 집 거실에 있는 책장은 천장까지 닿아 있다. 책꽂이가 높다 보니 위 칸을 사용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했다. 김창균 소장은 위쪽으로 배치된 칸을 좌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동식 사다리를 제작했다. 그럼에도 맨 위 칸은 손이 잘 닿지 않아 결국에는 쓰지 않는 공간이 될 것이다.
“자주 읽는 책들은 아래에 두고 잘 읽지 않는 책은 위쪽에 꽂아두어요. 그리고 위쪽 칸에는 사진이나 소품을 넣어서 진열장처럼 사용할 예정이에요. 2층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건축주는 위 칸에 가족사진이나 소품을 진열해 놓을 생각이라고 한다. 책장은 2층까지 솟아 있어 2층 복도에서도 이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지 않는 책이라도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었다. 책도 숨을 쉰다. 자주 환기해주고 펼쳐보아야 쉽게 변색하지 않고 묵은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잘 보지 않는 책이라 하더라도 책장에 꽂아두는 편이 오래도록 책을 보관하는 방법 중 하나다. 게다가 창고에 묵혀두기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두면 언제라도 생각이 날 때 읽어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책꽂이의 높은 칸은 보관과 전시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위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책장이 있는 집은 언제나 세상을 향한 물을 열어 놓고 있다.
사진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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