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떠나고 싶은 여행지 1순위로 몇 년째 랭킹되어 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두세 번도 더 다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레이캬비크처럼 발음조차 쉽지 않은 불친절한 이름의 도시에 나는 언제나 매료됐다.
![]() |
▲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포스터 |
“한적한 나라의 북적대는 도시. 수천 개 빌딩이 하늘 높이 솟은 곳. 그것도 제멋대로. 큰 건물 옆에 작은 건물. 합리적인 건물 옆에 비합리적인 건물.” 남자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함께 건물 전경이 담긴 짧은 컷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도시를 향한 그의 살벌한 평가는 계속 이어진다. “두서없는 이 건물들은 실패한 도시계획의 산물이다. 공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집은 점점 작아진다. 아파트의 분류 기준은 방의 개수가 됐다. 방 다섯 개짜리부터, ‘닭장’이라 불리는 원룸 아파트까지.”
영화의 주인공 마틴과 마리아나는 이‘실패한 도시계획의 산물’의 피해자다. 이 둘의 집이 속한 아파트의 측면에는 창문이 없다. 가능한 한 더 많은 빌딩을 다닥다닥 세우려는 계획안에서 창문은 불필요한 존재다. 소통의 의지조차 거세된 도시의 남녀는 한없이 고독하다.
마틴은 몇 년째 공황발작에 시달리고, 마리아나는 이웃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벽에 기대어 눈물 한 덩이를 꿀꺽 삼킨다.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마음이 닿기도 전에 미끄러지기 일쑤다.
그리고 어느 날,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안락한 보호막인 동시에 출구 없는 동굴이었던 공간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한다. 쾅쾅쾅. 망치를 내려친 곳은 다름 아닌 집의 측벽. 햇살과 적당한 소음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으로 상체를 내밀어 거리의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저 거리 위를 걷고 있을, 운명의,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엔딩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나의 도시 서울을 떠올렸다. 지구 반대편의 풍경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다행히도 건물마다 창문은 많다.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