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구학교 김석범... 한국의 전통가구를 재해석하다

공예 / 허재희 기자 / 2026-09-26 21:48:04
우리의 가구는 우리의 의식주와 잘 어울려야 한다

 

한국가구학교의 김석범 선생은 30년이 넘게 가구 만드는 일과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가구에 들어간 수고를 누군가가 알아줄 때와 알고 있는 것을 나눠주고 그것으로 성장하는 이들을 볼 때가 가장 즐겁다. 예술과 교육, 이 둘을 빼고 그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걸 보니 이것들은 그의 소명인 듯싶었다.

흔들리며 찾아가는 길 

 

김석범 선생의 아버지는 한옥에 정통한 대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나무를 깎아 무언가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과 같이 힘든 일을 하길 바라지 않았기에 공구함을 넣은 창고는 늘 잠겨 있었다. 하지만 나무를 만지는 것에 대한 흥미는 그렇게 쉽게 잠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면 몰래 창고 열쇠를 손에 넣어 맘껏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직업학교에서 1년간 목공을 배웠고 그 후에 들어간 대학에서는 공예미술을 전공하며 목공예에 힘을 쏟았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실용가구보다는 오브제 스타일의 조각이 많이 들어간 가구를 주로 만들었다. 졸업 후엔 직업학교에서 수강생들에게 목공을 가르치다 그곳에서 제자로 만난 정희석 작가(現 ㈜만들고 대표이사)와 가구 공장을 차렸다.


 

만드는 것엔 도가 텄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다른 영역이었다. 기계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부상자가 계속해서 발생했고 물량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가구
를 만들다 보니 하자도 많이 생겼다. 결국 1년 만에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사업도 물질적인 것에 욕심을 내는 것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3년간 목조주택 현장을 전전하다 더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해 교직으로 돌아왔다.

전통가구의 현대적 재해석

그의 꾸준한 관심사는 전통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보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생활양식이 바뀌고 가구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어 가야 하는 데 우린 과도기란 게 없었어요.” 일제 강점기 때 문물개방과 함께 모든 것이 서양식으로 급변하며 우리 것은 무조건 낡고 고루한 것이고 서양의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대중의 의식을 장악했다. 그 때문에 우리 전통가구는 현대화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잃어버렸던 우리 전통가구의 과도기를 채워 현대에까지 이르게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고 했다. “종종 유럽에서 가구나 인테리어 등을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싱크대 상판을 원목으로 만들어요. 예쁘죠. 그런데 우리 음식문화에는 맞지 않아요. 우리는 국물 요리가 많은데 원목에 떨어진 국물 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온돌문화잖아요. 예전엔 구들장이 새카맣게 탈 정도로 난방을 하곤 했어요. 일반 상식으로는 가구가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전통가구는 버텼단 말이죠. 쉽게 얘기하면, 우리 의식주에 맞는 전통가구의 요소들을 좀 더 현대적인 디자인과 작업 과정으로 구현하려는 거예요.”

그는 이를 위해 얇은 판재를 여러 장 겹쳐서 압축하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고 현대가구에 주로 사용되는 오크 등의 목재를 사용해 가구의 단가를 낮췄다.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이다. 또 전통가구의 패턴을 손잡이나 장식적인 요소 등에 조각으로 가미했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존재감이 남다른 가구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는 전통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생활에 가만히 녹아드는 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자기 만족으로 끝나고 만다. 아직 그에겐 전통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구의 필요성을 작품으로 증명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앎을 나누는 즐거움


개인 작업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그가 계속해서 수강생들 앞에 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3년 전 배우 천호진, ㈜만들고 대표이사 정희석과 한국가구학교를 만든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한정된 시장을 나눠 갖는 것에 대한 불안은 좁은 시야일 뿐이라고 했다.

“같은 모델을 두고 작업해도 작업자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가구가 나와요. 그럼 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더 넓어지고, 이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내 것도 고려 대상에 넣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러니 지식을 나누는 건 상생의 기본인 거죠.”

요즘 젊은 수강생들을 대하다 보면 조급해하는 이들이 많아 그는 안타깝다. 나무의 물성은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예쁜 결을 만나 실력보다 더 나은 가구를 완성하기도 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구를 만들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 터지거나 뒤틀리기도 한다. 빨리 가려고만 하는 사람에겐 천천히 제대로 가는 방향을 제시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교단에서 꾸준함의 미학과 목공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한국의 전통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개인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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