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연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 Unfinished Scene>... 무던한 살핌의 조각 미학

칼럼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5-09-18 22:03:48

 

나무의 물성이 언어를 짓고 개념을 지배한다. 물성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고 작가의 의도라고 하기에는 물성의 아우성이 처절하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백연수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은 엄격한 침묵의 개입이 공간의 질감을 지배하고 있다. 소묘와 같은 가벼운 조각에서 나무의 뿌리를 상상하게 하는 묵직한 조각에는, 마치 장편 소설의 암묵과 징후가 도사린다. 어두운 공간에 누운 나무 살갗의 부릅뜬 시선에서 생의 기울기가 선명하다.  

 


전시는 미술관 1층 1전시실에서 3층 3전시실까지 3개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 사물을 재현한 현시적 작업, 두루마리 화장지를 대상으로 한 <쌓기 연습> 연작 시리즈, 최신작 <드러나는 것>과 <끝나지 않은 장면>이 ‘구(球)’, ‘이방체’, ‘대봉감’, ‘풀줄기’ 형태로 관객을 맞이한다.

결함투성의 재료인 나무는 작가에게 무형의 저항과 반발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미학의 줄기를 남긴다. 아무리 다듬고 어루만져도 나무는 적당히 자기 갈 길을 멈추지 않는 악재(惡材)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나무의 속성은 작가에게 호된 회초리를 들게 했고 백연수는 그것의 하나로 채색을 선택했다. 불가피한 결정이었으리라.  

 


실체로 존재하기 대상에 채색을 한다는 것은 작가의 내심을 재현한 것으로 이는 백연수 목조각의 고유함으로 안착한다. 세잔, 브랑쿠시의 환원적인 형태의 기반이 작업의 동기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분명 그들에게는 없는 미학이 울렁대고 그 결과 값 또한 다르다.

3층에서 시작한 전시 공간의 기운은 1층에 이르면서 완전한 침묵의 소리로 가득하다. 언어와 자아, 신화와 세계가 버물어진 나무 조각은 실리와 유용을 물리치고 저기압의 침울함과 상실감을 자양분 삼고 있다. “침묵은 말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 독일 작가 ‘막스 피카르트’의 성스러운 언어가 나무 조각의 몸에 파편처럼 박혀 있다. 

 


일상의 사물을 물리치고 직관적 조각 세계로 돌아선 백연수의 ‘살핌’의 미학이 궁금해졌다. 그는 전시 서문에서 사상(捨象 형태를 버리는 것)하며 추상했고, 나무와 혼연일체가 되어 ‘재료의 미학’을 탐문했다고 한다. 전시 제목 ’끝나지 않은 장면’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는 “여전히 미완이고, 모색 중이다”라는 실토를 기꺼이 수용하면서, 백연수 조각 미학의 종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기 살을 도려낸 그 자리에 새살을 돋아내는 나무의 살신성인이 작가에게 미학이 될지 난감한 도전이 될지도 함께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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