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의 연금술: 기레빠시에서 오브제로...조민열의 청바지 재활용 작업에 대하여

공예 / 최범 / 2024-11-12 23:04:02
2024 삼각산금암미술관 공예 전시 공모전 선정작
데님의 연금술이 조형한 공예미술
삼각산금암미술관에서 11월 7일부터 12월 18일까지 열려

“생각난다
신당동 중앙시장
팥 적은 붕어빵과 곱창으로 넘긴
그해 겨울의 저녁과 아침.
시골 여상 출신의 그대가
졸음 쏟아지는 미싱대에서
주판알 대신 올리고 내리던 기래빠시 천과
얇은 홑이불의 동거 시절.
생각난다
반찬 없이 행복했던
우리들의 겸상과
조금 어색해서 더 사랑스러웠던
첫날밤이.
신당동 가다보면
들려온다
미싱 도는 소리
그대 숨소리
세상 한쪽에서
그대가 그대를 찢고
그대를 이어가는 소리”

김주대의 <동거-신당동에서>라는 시의 전문이다. 좀 뜬금없지만 조민열의 작업을 보고 이 시가 떠올랐다. 기레빠시라는 말 때문이다.(시에서는 기래빠시) 기레빠시는 일본말로 자투리 천이라는 뜻인데 봉제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멋진 랜드마크도 들어섰지만, 동대문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의류 도매상가이다. 신당동은 창신동과 함께 동대문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배후기지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는 봉제업 위주의 소규모 마찌꼬바(동네공장)가 많이 있다.

 


요즘 잘 나가는 신세대 작가 이야기를 하면서 동대문시장이 어떻고 봉제공장이 어떻고, 왠 궁상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70~80년대의 산업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나는 기레빠시 하면 그때 그 시절 정서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조민열의 작품이 바로 그 청바지 기레빠시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과연 구세대 평론가인 나는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스위스에서 유학까지 한 신세대 작가인 조민열의 작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조민열은 청바지 소재(데님)의 천 조각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의 오브제를 만든다. 부드러운 천으로 딱딱한 오브제를 만들려면 상당한 정성을 들여야 한다. 천 조각을 아교로 겹겹이 접착하여(레이어링) 일정한 두께로 만든 다음 그것을 구부리고 붙이거나, 아니면 잘게 자른 조각을 조금씩 겹치게 이어 붙여 띠를 만들고 그것을 감아올려(코일링) 형태를 만드는 두 가지 기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은 잔이나 화병, 항아리 같은 일상의 친근한 물건들이다. 형태도 형태지만 그렇게 만든 물건의 표면을 그라인더로 갈아 미묘한 질감과 무늬를 끄집어낸다. 그래서 조민열의 오브제들은 섬유의 직조 무늬가 바탕에 깔리면서도 그 위에 대리석 표면 같은 마블링 효과가 어우러져 독특한 감각이 살아난다. 섬유지만 도자기 같기도 하고 금속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다. 한마디로 청바지를 갈아서(?) 오브제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데님의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원래 여러 가지 금속으로 금을 만들어내는 비법을 찾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실험 과정에서 다양한 과학적·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연금술은 근대화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어쩌면 연금술 덕분에 금보다 더 귀한 물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민열이 원래 만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작가가 일정한 조건 속에서 데님 천 조각을 재활용해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거기에는 모종의 연금술이 작용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새 청바지(뉴진스)라는 이름의 걸그룹이 인기를 끌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양복점에서 청바지를 맞춰 입었던 내게 청바지에 대한 기억은 요즘 세대와 많이 다르다. 이른바 386세대인 내게 청바지는 청년문화와 하위문화의 상징이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대표되는 나의 세대는 한편으로는 김민기와 양희은과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를, 다른 한편으로는 청계천 봉제공장의 전태일과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청바지에는 청년문화와 저항과 뭐... 그런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적어도 내게는.


196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금자탑이었던 <맨발의 청춘>을 보면 영화배우 트위스트 김이 청바지를 입고 트위스트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죽을 때 청바지를 입혀 화장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청바지는 원래 미국 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0~70년대가 되면서 청년들이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히피와 청년문화와 저항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이야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이지만 원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청바지를 입는 것은 저항과 불온함을 의미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청바지를 입고 교회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지를 금지하라”라고 외친 68혁명 이후 청바지는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조민열의 데님 작업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1970년대 청년문화를 겪은 세대인 내게 조민열의 작업은 조금 다른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청바지를 가지고 이런 것을 만들 수도 있구나 하고. 내 세대의 기억도 몽땅 갈아 넣은. 그래서 나는 조민열에게서 한국 현대공예의 콤플렉스가 창조적으로 극복되었음을 발견한다. 19세기 후반 전통공예의 붕괴 이후 식민지와 산업화를 겪으면서 한국 공예는 방황을 거듭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장르 정체성을 상실한 공예는 미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내가 ‘르네상스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미술에 대한 콤플렉스가 한국 공예를 지배했고, 그리하여 한국 공예가들은 너나없이 미술의 아류(?)가 되기를 욕망했다. 하지만 조민열을 비롯한 일군의 젊은 공예가들에게는 그런 콤플렉스가 없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제 한국의 미술공예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공예가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산업화의 우중충함도, 민주화의 후줄근함도 없는, 아니 모르는 새로운 세대들, 그들에게 데님과 청바지와 기레빠시는 전혀 다른 물질임을. 거기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하나의 다른 감성, 다른 세계이다. 조민열의 데님 작업은 나와 전혀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가진 세대의 출현을 의미한다. 과거를 모르는 이 새로운 공예가 세대에게 축복을!


창신동 산꼭대기에 있는 창신소통공작소라는 곳에서 조민열 작가를 만났다.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간인데, 조민열은 현재 여기에 입주작가로 있다고 한다. 봉제업의 성지인 창신동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작업실에는 데님 조각으로 만든 항아리며 소품 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저기 아래의 마찌꼬바들과 그곳의 기레빠시들이 이렇게 조민열의 데님 작업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도무지 뺨을 꼬집어도 실감나지 않는 어떤 환상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글: 최 범/ 디자인 평론가

 

자료 제공: 삼각산금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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