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 ‘개뿔’...작은 것이 아름답다

건축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6-02-28 10:18:11
근대 건축의 잔여가 주는 작은 단상

 

우리나라 최초의 연립형 타운하우스는 1957년대 구릉지에 건립한 이화동 국민주택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산물의 근대 주택이어서 그 근본이 의심스럽지만 선친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고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현대식 주택이어서 마냥 방관만 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돈을 더 벌은 자는 떠나고 가난한 자들이 모여들었다. 같은 고도의 평창동과 성북동은 부자동네로 일컫지만 이화동은 산동네로 불렸다. 70년대는 가까운 동대문 시장의 활성화로 봉제와 미싱 공장이 들어차기도 했다. 무분별한 도시계획으로 서울 성곽 마을 중 최적의 도시 환경을 지녔음에도 이화동 일대는 늘 낙후지역의 상징이었다.

이 마을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아파트 숲으로 메워질 뻔했지만 다행이도 마을 형태를 보존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인데 그 시그널은 다름 아닌 벽화였다. 벽화는 이곳이 곧 허물어질 것이라는 예고편이기도 한데, 그것이 문화의 씨앗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가치를 재조명 받게 됐다. 하지만 현지의 생활인들에게는 득과 실의 함수관계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별 것 아닌 건축에서 별 것을 알게 된다 



이런저런 연유를 뒤로 하고 이화동 계단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개뿔’이라는 건축물을 만난다. 와인 스크루 장식품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이 집은, 타운하우스 140채 중 유일하게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이다. 열 평 내외의 작은 건축물인 개뿔은, 우리가 필요한 집의 적정 평수를 유추할 수 있는 샘플 하우스다.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방과 방 그리고 다시 거실과 방이 이어진다. 방 하나의 크기는 2m×2m 정도로 채 한 평 반 밖에 되지 않는다. 각 방 바다의 크기가 조금씩은 다르지만 현재 우리들이 주거하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작은 뒷방 정도다.

작은 방의 답답한 시야를 극복하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각 방마다의 창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크다. 한옥은 열린 마당을 끼고 있어 창의 크기가 작아도 무방하지만, 마당이 부족한 소형주택에서는 창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마침 창 너머로 펼쳐지는 서쪽 오후의 서울 풍경은 서울 최고의 전망이다. 해가 지고 밤의 서울이 야경으로 다시 이어지면 낙산이 명당인 연유를 절로 알게 된다. 낙타의 등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낙산은 이화동의 근원지다.  

 

 


이층으로 오르면 계단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하나씩 병렬 배치되어 있다. 또 계단 상부의 공간과 유휴 벽면은 가능한 한 다용도실로 개조했다. 좁은 공간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화장실 벽면은 성곽을 쌓은 돌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건축 공간의 협소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요즘의 국민주택은 85㎡(약 25평)인데, 개뿔에 비하면 넉넉한 공간이다. 집에 대한 사유나 실용의 기준은 절대적일 수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사용자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용자의 판단이라는 것이 적확한 기준이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집, 다른 삶의 예를 참고하는 것이어서 처음 집을 짓는 사람은 적잖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일률적 기준을 제시한 아파트에 우리의 삶을 맞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뿔 주택을 찬찬히 본 이는 2~3인 가족이 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텅 빈 공간만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집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가장 사치스러운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 일본의 건축 저서가인 ‘다카무라 토모아’의 주장은 개뿔 주택 앞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것은 삶의 부피와 짐의 무게를 줄이라는 의미이고, 환경 철학자 소로우의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는 권고는 요즘의 시대에 점점 또렷이 새겨진다.

 

 


미래문화 유산이 되기까지

개뿔 건물은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이 경기대 안창모 교수의 고증에 근거해 왜곡된 수리 부분을 원 위치로 복원한 집이다. 최초의 콘크리트 타운하우스라 해도 세월의 좀은 피할 수 없고 생활양식에 쫓긴 건축은 변형과 변질을 따르게 된다. 이 집에도 누군가가 살았고 세월을 보탰을 거다. 매일 30~40도의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내린 집 주인은 풍경에 취하기 전에 근육통으로 밤을 설쳤고, 아침이면 다시 올 생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지 모른다.  

 


집은 연탄, 프로판 가스 시대를 거치면서 터지고 갈라졌고 식구가 늘면서 수리와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곳이 ‘지속가능성과 가치’를 위한 마을 공동체 재생 프로젝터의 주인공이 될 지는 차마 상상조차 했을까. 시간의 힘을 믿는다면 지금의 많은 건축물의 오류와 과대함 역시 또 다른 이해로 이어질 것이다.

본질이 왜곡된 거대한 사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집이다. 누구라도 자산이 모이면 먼저 집을 장만한다. 때론 성장기 자본의 논리로 때론 정치적 이유로 혹은 집단적 이기로 집은 지어졌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대한민국 금융의 발화점이라는 끔직한 뉴스가 되고만 것도 바로 집이다. 우리가 진정 가치 있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것’에 대한 깊은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주택 ‘개뿔’을 찾아가 본 이유도 그것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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