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구의 새로운 형식 제안
기능과 서사를 담은 가구전
![]() |
▲ 나점수의 가구는 물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로부터 시작됐다. |
물질은 인식 이전의 상태고, 체(體)는 인식된 것들이 형식을 갖춰 드러나는 것이니 물(物)이 체(體)가 되어 격(格)을 갖춘 물체(物體)가 된다는 것은 구조와 기능을 넘어 심미적 도취와 승화의 변모를 품고 있어야 한다.
물체로부터 격(格)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물질이 형태에 구속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인위가 우연을 배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사물이 기능에 함몰 되면 구조만이 드러나게 되고, 물질이 과도하게 가공될 때는 물성(物性)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경계하는 마음에는 유보의 마음이 있어야 하며, 유보의 마음에는 감춤의 마음이 있어야 하니, 조형 예술을 대하는 시선에는 감춤과 드러냄, 조율과 승화의 감각이 있어야한다.
물질을 다룬다는 것은 다가감의 여정과 같은 것이다. 살핌은 현상하고 있는 물질의 모습을 직감하는 것이고, 다가감은 물질을 덜어내거나 제시하는 과정이다. 덜어진 것을 통해 정신의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물질에 다가가는 이의 업(業)이며 태도이니 이를 가르켜 예를 향한 길, 예도(藝道))라 부르고자 한다.
비어있는 수평 공간, <테이블>
![]() |
▲ 나점수 책상 <무명_ 정신의 위치> |
지면으로부터 물질을 상승시켜 현실의 지평 위에 여백을 품게 하는 것이 테이블이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행위와 과정들이며 정신의 드러냄이니, 테이블이란 공간은 품어 안아 채워지고 흩어지는 소통의 통로가 된다. 여백이란 비어 있지 않고서는 품을 수 없으니, 테이블의 본질은 언제나 비어 있음에 인접해 있다. 그것은 붙들 수 없는 현상의 연속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지금 우리를 이곳의 시간에 머물게 하는 장소가 된다.
* 앉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것, <의자>
![]() |
▲ 나점수 의자 <무명_ 정신의 위치> |
물질로부터 불러낸 구조와 형태는 어떤 상태에 인접해 있는가? 이것은 의자라는 구조와 물질적 속성 사이에 위치한다. 그것의 상태는 가공을 미루어 물질(物質)을 툭하고 제시하고 있으니 구조와 기교의 영역은 퇴보되고 자연의 시간이 품고 변화한 흔적과 물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기능을 따르려는 태도가 아니라 물질의 현상에 인접해 자연의 성품에 다가는 것을 말한다. 기능의 의자로부터 감각의 의자로, 감각의 의자로부터 사유(思惟)의 의자로 제시하고자 한다.
* 공간을 품은 물질과 물질에 인접한 정신, <책장>
![]() |
▲ 한 권의 책만 둘 수 있는 책장 |
오래된 나무의 내부를 파고들다보면 알 수없는 무게 같은 것을 느낀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어둠의 무게 같은 것인데 그리 덜어내고 남겨진 빈 공간에서는 오래된 나무의 향이 스민다. 마치 한권의 책을 선택한 한 사람의 마음의 향기처럼 그것은 생의 무게를 덜어내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책장은 책을 품어 하나의 세계를 열고 있으며 나무는 마음의 방향을 관조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선택하는 모든 것은 흩어지고, 흩어진 모든 것은 시원으로 돌아간다.”
* 물질이 공간을 품어 시(時)로 놓인다, <공간>
![]() |
▲ 전시 중인 <아트스페이스3> 공간 |
‘정신을 품은 몸과 몸에 인접한 정신’ 그것은 둘이 아니다. 내게 공간(空間)이란 붙들 수 없는 시 같은 것이니 ‘물질은 공간에 놓여 시(詩)가 되고, 시는 물질을 품어 생명(生命)이 된다.’ 내 작품에 형성된 공간은 물질이 탈각되거나 구조의 사이에 조성된 여백이다. 그 빈 공간의 상태는 언어의 정의로부터 하강한 시(詩)적 정서에 가깝다.
글: 나점수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