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종사하는 이혜정 씨는 서울 공덕동에 자신의 집을 마련했다. 그녀는 보금자리를 이전과는 달리 과감하고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일일이 직접 손대기에는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자신도 없었다. 이혜정 씨가 집을 계약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자기 맘에 쏙 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찾는 일이었다. 발품과 인터넷을 오가며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본 끝에 이혜정 씨가 찾은 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이었다.
오래도록 변치 않는 멋
처음에는 유명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메탈이나 차가운 느낌의 소재를 많이 사용하여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 끝에 찾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의 작업은 따뜻하면서도 심플한 멋이 있었다. 그 길로 전화를 걸어 지금의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에는 전적으로 실장님에게 인테리어를 맡겼어요. 이 집에 오기 전까지도 인테리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쉽게 시도하지 못했거든요. 저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해서 가구를 사도 금세 질리거나 다음 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버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주게 된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 실장님은 내가 원하는 집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면서 제가 숙제를 주시더라고요. 잡지책이나 TV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스크랩 해 두었다가 실장님에게 보여주곤 했어요.”
전문가를 찾는 이유는 모든 걸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집은 내 것이라는 정체성이 약하다. 디자이너 이길연은 의뢰인들이 자신의 취향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다. 공덕동 싱글 하우스의 개조는 이길연 실장의 지휘로 진행됐지만, 혜정 씨의 인테리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집은 자연 소재를 활용하여 따뜻하면서도 유행을 따르지 않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한 것은 고재다. 문틀이나 모서리 등을 오래된 목재로 마감하였는데, 따로 오일이나 바니시처리를 하지 않고 나무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려 실내에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 수 있게 됐다. 그리 많은 가구를 놓지 않았음에도 이혜정 씨의 집이 썰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고재 덕분이다.
목재를 곳곳에 사용했지만, 실내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의 깔끔하고 모던한 스타일로 이뤄져 있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는 과감히 없앴다. 인테리어를 마무리한 지 5년 가까이 되었지만 혜정 씨의 집은 지금의 유행과 전혀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그만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공간에는 포인트를 주었다. 특히 가구가 적은 거실은 헤링본 바닥재를 깔아 썰렁함을 상쇄시키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침실에는 침대와 조명, 벽걸이 TV가 전부지만, 흰색 벽에 핑크 컬러를 더해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완성했다.
숨은 1평을 찾아서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내부 곳곳에 설치된 문에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곳에는 우리가 알던 여닫이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길연 실장은 기존의 문을 모두 떼어내고 집에 어울리면서도 공간을 차지 않는 형태로 교체했다.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문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 슬라이딩이나 폴딩의 방식을 택했다. 문을 모두 젖혀 놓으면 그 존재를 잊게 된다. 마치 모든 공간이 원래부터 하나로 뚫려 있던 것처럼 말이다.
특이한 점은 문이 필요 없을 법한 주방에 접이식 도어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있던 문도 다 없애는 마당에 웬 문일까 싶었지만, 이는 주방 옆 공간을 더욱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존재가 됐다. 평소에는 젖혀 두었다가 가끔씩 손님이 오거나 주방의 어수선함을 가리고 싶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창살문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문 뒤로 주방을 숨기면 식탁이 놓인 공간은 부엌이 아닌 다이닝룸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처럼 이길연 실장은 숨김과 확장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탁 트인 실내를 만들었다. 주어진 면적 안에서 공간을 최대한 넓어보이게 만든 것이 의뢰인의 요구 사항이었다. 24평형은 혼자 살기에는 그리 좁은 공간은 아니지만, 아파트 구조 상 집 안에 들어섰을 때 답답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실장은 천장을 뜯어 노출 콘크리트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천장은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배수관도 가리지 않아, 실내가 넓어 보이는 한편 인테리어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숨김의 방식을 택해 붙박이 수납장을 활용하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만 마련했다. TV는 벽걸이형으로 제작했고, 부엌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고 붙박이장을 만들었다.
필요 없는 공간은 과감히 개조했다. 방 세 개 중 부엌 옆의 방은 다이닝 룸으로 확장했으며, 침실에 있는 화장실은 파우더룸으로 용도를 바꿨다. 혜정 씨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게 각 공간을 변경한 것이다. 이로써 공덕동의 흔한 24평 아파트는 획일화된 구조에서 벗어나 한 사람만을 위한 집으로 재탄생됐다.
자료제공 '디자인파트너 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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