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대에 오르다... 여자 목수로 살다

라이프 / 서바름 기자 / 2025-10-10 14:18:19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이미혜는 예술 중.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한국무용학과를 졸업했다. 그녀가 거쳐 온 20년 무용수의 길은 나름 ‘엘리트 루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무용수 타이틀을 미련 없이 버리고 런던발 비행기에 올랐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면 마음이 공허한 적이 많았어요. 무용은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무대라는 제약적인 공간에서 나를 표현하고 관객과 소통을 해야 하죠.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시간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데 무대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잖아요. 그런 공허함과 허무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런던은 무작정 쉬고 싶어서 떠났죠.”

쉬는 동안 그녀가 도전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목공이었다. 공들여 작업한 결과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 계획을 세워 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고, 작업이 끝난 후에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그녀가 목공을 선택한 이유다. 그런데 그녀가 가구를 만들면서 무용을 했던 전력이 도움 됐던 순간도 있었다.

“무용을 하면서 몸에 밴 것 중 하나가 ‘끈기’예요. 안 되는 동작은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해서라도 완벽한 동작으로 연결될 때까지 반복하곤 했는데 그런 점이 목공을 하면서도 필요하더라고요.”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는 일은 여자가 해내기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제 막 목수의 길에 들어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의 손은 벌써 상처투성이다. 무용수의 딸을 꿈꾸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이기에 힘들다는 투정은 할 수 없었다. 무용을 시작하고 배움의 시간을 묵묵히 지내온 것처럼 미혜 씨는 다시 한 번 오랜 배움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얼마 전 첫 가구를 만들었다. 자신이 지향하는 목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스툴인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가구를 만드는 직업을 정할 때, 적성과 환경, 조건 등 선택해야 하는 많은 변수를 제가 직접 선택하고 조율해서 하나의 삶으로 균형을 맞추어 나간다는 의미를 담은 스툴이에요. 목수로서 균형을 잃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업하고 싶어요.”

작은 디테일에도 이야기를 담고 진심을 다해 만든 그녀의 스툴만 보아도 목수의 기질이 다분한 성정을 느낄 수 있다. 현재 그녀는 강동구 천중로에 자신만의 목공 스튜디오 ‘온리우드(onrhee wood)’를 열고 자신의 가구와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디자인과 실용이 조화를 이루는 그녀의 가구는 다양한 공간에서 가치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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