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읽다] 느티나무...나무가 갖춰야 할 모든 것

공예 / 김수정 기자 / 2025-02-17 18:04:05

 

천년을 견딘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은 느티나무였다. 천년을 가는 견고함과 아름답고 우아한 무늬까지 나무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는 ‘나무의 황제’ 느티나무를 만나보자.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20~30m에 달하는 껑충 큰 키에 어른 두셋이 둘러 안아야 품에 안을 수 있는 통직한 몸통, ‘그늘은 느티나무’라는 말이 나오게 사방으로 넉넉히 뻗은 가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느티나무의 정다운 외양이다.  

 


느티나무 하면 보통 고목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느티나무가 은행나무와 더불어 수명이 가장 긴 나무이기 때문이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몇 백 년은 보통이고 천 년을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현재 산림청의 지도 감독을 받아 각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는 고목은 약 1만 3천 그루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7천 1백 그루가 느티나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천년 묵은 느티나무로 만든 책상이나 소품을 귀하게 찾아볼 수 있다.

느티나무를 흔히 괴목(槐木)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괴목은 중국에서 들어온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  

 



느티나무에 대한 편애


한국인의 느티나무 사랑은 예부터 유난했다. 마을 입구에 장승처럼 서서 마을의 수호목 구실을 하는 당산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였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느티나무를 해치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단단히 이르곤 했다. 느티나무의 넉넉한 그늘은 여름 농사에 지친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마을의 일을 결정하는 여론 광장이었다. 한국인에게 느티나무가 유독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옛 전설과 문헌에서도 느티나무는 단골처럼 등장한다. 들판에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잠이 든 주인을 구하려다 죽었다는 ‘오수의 개’ 전설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그 개의 무덤에 꽂아둔 지팡이에서 싹이 나 느티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고려 적에도 느티나무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충북 괴산군의 지명도 느티나무에서 유래했다. 옛 신라 진평왕 때 찬덕이라는 장수가 백제군에 포위된 채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성이 함락되자 성 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고 만다. 태종 무열왕은 그의 죽음을 기려 그가 지킨 성 주변의 지명을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서 괴산이라 부르게 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괴산군이 된 것이다. 지금도 괴산군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모든 장점을 갖춘 나무



느티나무는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로 이름이 높다. 윤기 나는 황갈색 목재 위에 물결처럼 어룽진 나이테의 곡선은 무척이나 우아하다. 이는 물을 운반하는 물관의 배열이 독특하기 때문인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비늘, 구슬, 모란꽃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광택도 더 난다고 한다. 이렇게 무늬가 뛰어난 느티나무를 따로 용목(龍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보통 연약함과 쌍을 이루기 마련이지만, 느티나무 목재는 아름다움은 물론 견고함까지 갖추고 있다. 마찰과 충격은 물론 습기와 충해에도 강해 좀처럼 썩거나 벌레 먹지 않는다. 조선 세종조 문헌에 “싸움배를 만드는 방법으로써 느티나무 판을 써서 겹으로 만들고 만약 느티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면 다른 나무를 쓰라.”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이러하니 많은 목재상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느티나무를 첫손에 꼽는다. 나무 문화재 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도 느티나무를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졌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가히 나무 가운데 ‘엄친아’라 할 만 하다.


느티나무가 비싸진 이유  



느티나무는 예부터 작은 식기부터 절간 기둥까지 쓰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 건축재로 많이 쓰였다.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의 무량수전,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법보전, 구례 화엄사 등 이름난 목재 문화재 대부분이 느티나무로 만들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전국 목재 문화재의 기둥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 문화재 55%, 조선시대 문화재 21%가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60~80년대만 해도 바닥재나 계단재로 흔히 쓰이던 느티나무가 ‘귀한 몸’이 된 건 90년대 이후다. 공급 사정이 나빠지면서 가격이 훌쩍 오른 것이다. 느티나무 우드슬랩 중에서도 무늬가 아름다운 것은 990만 원(L3300 W8990 H70mm)을 호가한다. 하드우드 중 최고 수준이다.



공급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티나무의 까다로운 성질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어 한 군데 모아 심으면 가지를 뻗지 못해 죽고 마는데, 이렇다 보니 소나무처럼 대면적 조림이 어렵고 소군락이나 단목으로 전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형편이다. 또 느티나무는 목재로 사용되려면 100년 이상은 자라야 하는데 이렇게 오래된 느티나무는 많은 수가 보호수로 지정돼 베어내기가 여의치 않다. 현재 시장에 공급되는 느티나무는 대부분 수몰 예정지나 도로 공사에서 나온 것들로, 워낙 수량이 적어 가격이 비싸고 크기도 충분치 않아 주로 가구 제작에만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건축재로써 느티나무의 자리는 이페가 차지했다.


테이블로 즐길 때 매력적
 

 


가구재로서 느티나무는 오동나무, 먹감나무와 더불어 3대 우량목재로 꼽힌다. 특히 테이블을 만들 때 그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느티나무 가구점 거안의 가구 디자이너 안태현 씨는 말한다. 워낙 무늬가 아름답기 때문에 특별한 가공 없이 판재 그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가구계에서 느티나무는 그 명성만큼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 물론 가격적인 문제도 있지만 북유럽 스타일이 수년째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 가구 시장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느티나무가 훌륭한 가구재로 평가 받는 것은 뛰어난 목리(나뭇결) 때문인데, 북유럽 스타일 가구는 목리보다 전체적인 선을 중시하기 까닭에 느티나무가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염집 옷궤에서부터 왕의 무덤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가까이 있던 느티나무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공급 사정을 개선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한 세기는 족히 걸릴 일이다. 그야말로 백년대계가 필요한 느티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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