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황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푸릇한 여린 잎이 비죽 올라온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슬며시 안도한다. 아, 드디어 봄이 찾아 왔구나. 그러고 보면 화려하게 흐드러진 꽃송이에만 눈이 홀려 이 작은 생명을 무심히 대해왔던 것은 아닐까.
눈에 잘 띄지 않는 잎사귀만을 그러모아 유쾌한 드로잉 작업을 하는 이가 있다. 말레이시아의 그래픽 디자이너 탕추링(Tang Chiew Ling)이다. 그녀의 영감은 어머니가 정원에서 가꾸는 식물들이 땅으로 떨군 잎사귀로부터 시작된다.
이름 없는 잎사귀들은 탕추링의 기발한 상상력을 거쳐 비를 머금은 구름이 되거나 어린 소녀가 부는 비눗방울,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햄버거로 변신한다. 여기에 그녀의 담백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탕추링은 가위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잎 모양을 오리거나 변형시키지 않았다. 각각의 잎사귀가 지닌 고유한 모양새와 색을 유심히 관찰해 어울리는 배역을 부여했다. 길쭉한 어선, 하트, 풍선 등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뭇잎은 재밌는 ‘무엇’이 되어 보는 이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긴다.
일상의 작은 행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오브젝트 아트 1> 프로젝트는 결코 아티스트만의 것이 아니다. 4월, 푸릇푸릇한 나뭇잎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무엇이 보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탕추링(Tang Chiew Ling)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일상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대상들을 주제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 심플한 형태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작업을 즐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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