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내과 비전외과 검진센터... 병원이 숲을 꿈꿀 권리

건축 / 강진희 기자 / 2025-01-30 21:53:28

 

언젠가 지인과 건강검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꽤 오랜 기간 둘 다 같은 병원을 다녔음을 알게 됐다. 과하게 반가워한 기억이 난다. 일단 이런 건 사례가 몹시 드물다. 내가 인정하고 당신이 인정하는 어떤 사람, 맛집, 상품, 브랜드와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각자의 이유로 병원을 찾지만 증상과 걱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길어도 특정 병원이 대화의 구체적인 소재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도 알고 당신이 아는 어떤 병원이 드물게 화두가 된다고 할 때, 과거에는 ‘명의’ ‘만병통치약’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전략을 경쟁하는 오늘날은 위치와 내부 환경과 서비스로 대화의 내용이 좁혀진다. 검진 전문 병원이라면 머물고 대기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 수밖에 없으니 더 그렇다. 그때 입었던 병원복의 촉감이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병원의 스태프가 얼마나 친절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대기했는지, 전반적으로 얼마나 쾌적했는지 등등. 마지막으로 얼마나 비쌌는지도.

7층은 카페처럼 8층은 로비처럼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 위치한 우리 내과 비전외과 검진센터도 그런 이야기를 충분히 안겨줄 만한 병원이다. 카페에 온 것처럼 커피를 마신 후 7층에서 진료를 받아봤다면, 그리고 호텔 로비를 닮은 8층에서 대기하면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검진을 받아봤다면 언젠가는 그 기억을 나눌 만한 동네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환자 혹은 대기자가 여기서 얻고 나누게 될 편안하고 친근한 인상은 병원은 단지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자동적으로 처방전만 받아 가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세 건축주들의 합의에서 비롯됐다.

설계를 맡은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이승헌 교수에 따르면 건축주 세 명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40대 초반의 젊은 의사들이다. 그들은 병원은 아플 때만 어쩔 수 없이 찾아가야 하는 불가피하고 불편한 곳이 아니라 언제든 들러 건강을 상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상적인 병원이라면 환자 혹은 대기자가 머무르는 시간을 연장하고, 누구든 편안하게 문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을 찾아와 기다리는 대다수가 혼자라는 것도, 그러니 더 신경을 쓰고 더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중요했다.

숲을 은유한 병원



병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공간은 과연 친근하고 부드러운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치료는 의사의 몫이다. 치유는 자연이 잘하는 것이고 인공의 공간이 부단히 노력하는 분야다. 이승헌 교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을 택했다. 자연에서 답을 찾고 거기에 숲과 치유의 의미를 더했다. 숲을 떠올린 순간 생각은 나무로 곧장 이어졌지만, 목재가 아닌 숲에서 만나는 진짜 나무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나무, 혹은 추상의 나무로 아이디어의 기둥을 세운 후 경험했고 상상했던 숲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가 숲속에서 새삼 재발견한 내용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이다. 이윽고 숲을 나온 건축가는 그 순간을, 즉 자연채광을 만난 나무들 사이로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을 묘사하기로 마음먹었다. 8층 검진센터 방사선실 외벽에 수직으로 가지런히 자작나무 각재를 쌓은 이유, 그리고 각재 틈새로 수직 조명을 설치한 이유가 거기서 나온다.

 


종합검진은 기다림의 연속이자 긴장과 인내의 종합세트다. 검사 과정은 도무지 익숙하지 않고, 병원의 지시에 따라 계속해서 다음 코스로 이동해야 하고, 운이 없어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만나면 대기자수를 알리는 전광판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설계를 맡은 그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숲과 빛이라는 자연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나무와 태양을 건축의 관점에서 형상화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건축주는 카페 같은 병원과 호텔 같은 병원으로 원하는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건축가는 단순히 호텔과 카페를 옮겨놓지 않았다. 카페 같고 호텔 같은 공간을 구축하면서도 거기에 살을 붙여 자연을 더했다.

 


병원이 자연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을 닮으려는 병원의 꿈을 지지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언젠가는 결국 병원을 찾아야 하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에 오래 갇혀 있는 한 자연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 윤준환, 디자인스튜디오 RE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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