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흙에 의한, 흙을 위한... 신다인 <점>

아트 / 편집부 / 2024-06-07 11:07:34
흙을 애도한 후의 작업
물질에 대한 이해와 실행의 관계

생을 다한 인간은 땅에 묻히고 새로운 생명은 흙을 먹으며 살아간다. 수없이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 우리는 단지 한 점으로 잠시 존재한다. 나는 세상에 잠시 존재하며 흙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은 나를 만지는 일이면서 우리를 만지는 일이다.

 

▲ <점> 조합토, 70×70×70cm, 2024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흙을 빌어 사는 사람이 흙에게 이렇게 잔인했었다니” 그동안 흙을 대하는 태도에 거리낌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도예가에게 너무나 익숙한 물질인 흙은 말 그대로 ‘재료’였다. 하나의 도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흙은 원하는 형태로 빚어진 후 가마에서 높은 온도에 구워진다. 1200도가 넘는 온도를 견디고 나온 흙은 본래의 성질을 벗어나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이는 흙 속에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게 될 곳, 수없이 많은 우리들이 살고 있을 터전을 한 점 떼어내어 태워버린 결과물의 덩어리인 것이다.

내가 하는 예술은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다. 과연 나는 흙을 애도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번 애도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흙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을 작업에 담고자 했다. 단지 매체로만 다뤄오던 마음을 벗어던졌다. 흙 속에 존재하고 있을 생명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흙을 끌고 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흙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갔다. 그저 흙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최소한의 도구의 역할만 하였다. 서로 어색한 시간이 넘기고 나니 더 적극적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눌러줄 때 생기는 손자국은 작은 홈이 되었다. 홈이 생기며 나타나는 앞뒤 면의 겹침은 또 하나의 면을 만들었다. 그렇게 면과 흐름이 만나 점을 이루었다.

1200도가 넘는 가마에 구워지며 소멸하게 될 흙 속에 무수히 많은 ‘우리들’을 애도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다시 한번 그것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하는 과정으로 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글 : 신다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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