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없는 석어당

공예 / 김수정 기자 / 2024-08-26 17:34:56
▲ 석어당 전경 (사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고궁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곡선이 수려한 기와, 화려한 색감의 용과 주작(봉황) 문양이 수놓아진 궁궐의 모습은 위엄 있고 웅장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아이가 있는 부모나 연인들은 예스러움이 담겨있는 서울의 궁궐을 자주 찾곤 한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날이면, 궁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서울 중심가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궁궐은 단연 경복궁, 실제 기자가 주말에 방문했을 때도 상당한 인파와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러다간 제대로 궁궐의 정취를 감상하기는커녕 사람 구경만 할 듯싶어 덕수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궁궐의 크기나 웅장함은 비교적 덜해 사람들의 발길이 한적한 그곳으로 말이다.

덕수궁을 거닐던 중 화려한 문양과 색상으로 채색된 여러 건물과는 달리 유독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의 이름은 석어당(昔御堂). 옛날 선조가 머물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래된 나무 향내가 진동했다. 다른 기와 건축보다 허름하면서도 소나무 향이 진하게 배어나는 석어당은 덕수궁 건물 중 유일하게 중층으로 만들어졌다. 1904년 경운궁(덕수궁 옛 이름) 대화재로 건물이 불탄 후, 그해 다시 지어져 인공적인 칠을 가하지 않은 채로 중건됐다. 그러니 이 건물은 못해도 111년 정도는 된 것이다.

석어당이 가장 눈에 띄었던 이유는 왕실 안에 있는 건물답지 않은 소박함 때문이었다. 덕수궁이 궁궐의 웅장함은 덜하지만, 궁정건축물이기에 권위주의적 면모가 남아있다. 하지만 석어당은 달랐다. 나무에서 우러나는 세월의 향내가 고스란히 배 있었다. 심지어 조금은 남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로 석어당과 관련된 자료에 찾아보니 ‘재래식 민간건물의 성격이 두드러졌다’고 쓰여 있었다. 왜 유독 그렇게 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통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빛깔을 입혀 장식하는 일명 ‘단청’을 만드는데, 석어당에는 단청이 없었다. 단청은 왕권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에 비바람과 병충해로 보호하기 위해 칠한 방법이다. 단청이 없는 석어당에 대해 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돌아와 임시로 사용했을 때는 궁궐이 아니었으니 단청이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후, 선조 임금이 돌아가시자 그때의 어려웠던 날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단청을 하지 않은 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석어당이 어쩐지 다른 궁과는 달리 처연해 보였던 이유는 예전 선조들의 아픔과 고뇌가 서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나무 향이 진한 그곳. 언제 어디서나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는 나무의 빛깔과 무늬, 그리고 냄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고궁도 감상할 겸, 진하고 매캐한 나무 냄새 맡으러 석어당으로 가볼 생각 이다. 이번에는 구석구석 그곳의 자취를 더 깊이 느끼고, 맡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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