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을 순례한다. 여전히 인간의 말이 되지 못한 자연의 언어가 침묵의 궤도에 승선해 숲을 거닌다. 북서풍과 남동풍이 교차하는 순간에 사막의 건조를 머금은 인간의 언어는 조형 사물에 물들어 만물의 이치를 독배한다. 만물이 펼치는 감각에 스튜디오포(Studio_Foh)는 작은 몸을 눕힌다. 숲의 틈바구니로 비친 하늘을 그리고, 쓰러진 것을 매만지고, 물질을 다듬어 사물을 짓는다. 알아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몰라주어도 서운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 앞에 놓인 사물의 미세한 생명 감각에 천착할 뿐이다.
스튜디오포의 사물은 분명히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고, 무엇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어떤 것은 언어가 되고, 어떤 것은 순수한 기능이 된다. 관객이 사물과 기물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눈치 챌 수 있다면 다행이다. 사물의 표면은 스튜디오포의 감각이 드러난 기호다. 그것은 생태주(生態主義)의 세계관이나 자연의 사유를 갈구하는, 그래서 관습의 시선을 극복한 자리에 홀연히 피어나는 식물성 의식이다. 다시 말해 삶에서 비롯되고 자연으로 말미암은 정신이다. 예술과 기물의 구분은 작가에게 보잘 것 없는 아류적 형식일 뿐이다. 작가의 삶이란 나른한 미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투쟁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지속일 때, 스튜디오포는 그 안에 온전히 머문다.

스튜디오포의 개인전 <내가 던진 모든 질문>은 자기 서사의 대한 그동안의 질문이자 응답이다. 작가의 삶과 객관적 세계가 마주하는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타자의 존재 위에 존재하는 세계관의 흐름이다. 사물이 햇빛과 소리와 냄새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무의식의 의식이 기체를 이루는 장소이다. 작가는 질문이 형태로의 전이되어 일상으로의 확장하는 상태를 보이지 않고 단지 인지되는 상태로 남겨 두겠다고 선언했다. 조각에서 공예로, 일상에서 다시 조각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이동 경로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고, 결과가 아닌 태도로 바라보는 작가의 작업 세계가 포용적으로 제시된다. 사용 가능한 기물의 곡선에 조형적 질문이 그 연장선에 흐르는 채로.

전시 구성


스튜디오포는 과학과 예술이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듯, 순수와 실용 또한 사유와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미술적 실험과 태도가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지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불어 속도와 효율 대신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되묻는다. 인간은 필요한 사물과 의식화된 사물을 동시에 취한다. 어느 하나가 결핍된 상황을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세계-나-존재라는 하이데거 식 구조 위에 현재성을 추앙하는 각별한 존재들이다. 있고- 없음에 대해 민감해 하는 몽상적 생명체다.
스튜디오포가 지은 사물의 정신은 이미 일상의 감각에 점지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감각된 포자를 터뜨려 인간의 경험과 관계하는 물질의 시・공간성을 재배열했다. 나무와 풀과 곤충이 넘실대고 바위와 돌이 무심한 가운데 입자가 순환하는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객들은 무엇을 감지해야 할까. 그것은 작가가 던진 질문에 감각적으로 응대해야 하는 책무일 수도, 아니면 스스로의 질문을 찾아내야 하는 숙제 더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자연의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육상수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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