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위에 생명을 돋우는 목조각 장인 박찬수

공예 / 유다연 리포터 / 2023-01-30 10:10:34
전통 속에 피어나는 확고한 개성을 표현
나무의 향성(香性)과 견고함, 속성 등을 통해 나무의 메시지를 추려내

 

 

"나무? 나무는 ‘생명’이죠.” 물어서 뭐하냐는 듯 당당히 나무를 말하는 이 사람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108호로 지정된 박찬수 목조각장이다.

모든 것이 나무 그늘 아래

경남 산청 태생인 자신을 ‘촌놈’이라고 말하는 박찬수 목조각장. 그러나 본인의 말과는 달리, 그는 상당히 세련된 장인(匠人)이다. 이는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 알 수 있다. 박찬수 목조각장은 전통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며 그만의 작가적 개성이 담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 시도의 중심에는 늘 나무가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매일같이 나무를 다루는 목조각장이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나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없어요.”

확언하듯 말하는 박찬수 목조각장의 철학은 이렇다. 인류 초기에는 사방에 모든 것이 나무였다. 나무는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고 인간의 일생을 지키며 동고동락하는 자연인 것. 생각해 봐라. 우리는(우리 조상은) 나무로 집을 지어 살았고, 나무 불쏘시개로 밥을 지어 먹었고, 쟁기나 지게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등 생활 주변에는 늘 나무가 있었다.

 

▲ 성모마리아와 자모관음, 비자나무

 

▲ 용왕, 비자나무


여자아이가 여인으로 성장해 결혼할 때 타는 꽃가마도 나무 가마, 생을 마친 후 육신이 실리게 되는 상여도 나무 상여, 거기서 다시금 이동하게 되는 자리 역시 잘 짜인 나무 관이다. 그뿐인가. 죽은 이를 위한 제사상을 주도하는 목기(木器) 역시 나무로 만들어졌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늘 나무와 함께 하는 셈이다. 듣고 보니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박찬수 조각장의 말이 일리 있게 들린다.

박찬수 조각장의 말에 의하면 나무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의 여부는 그 사람의 심성과도 연결된단다. 옷을 해 입는 옷감이나, 즐겨 먹는 갖가지 열매 혹은 줄기 요리들, 보금자리인 집 등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의식주 전반에 알게 모르게 깊이 관여해 왔다. 나무 안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형태를 갖추고 살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목조각 작업을 하는 그가, 작업의 근원과도 같은 나무에 예를 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새삼스러울 바가 없다.

나무를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


 


박찬수 목조각 작업의 핵심은 나무의 결을 잘 살려 작품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나무의 향성(香性)과 견고함, 속성 등을 통해 나무의 메시지를 추려낸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화한다. 특히 향성은 그가 나무를 볼 때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인데, 침향나무를 비롯해 전나무, 삼목, 향나무와 같은 나무들이 갖고 있는 성질이다. 좋은 향성을 가진 나무를 보고 향을 맡으면 누구라도 정신이 곧아진다는 것이 박찬수 목조각장의 지론이다. 나무의 향성으로 인해 나무가 금값처럼 비싸게도 되고, 향성을 가짐으로써 나무는 불쏘시개도 되고 침대도 되고 또 궁궐도 된다고 보는 것이다.

“나무 하나를 가지고 사람을 만든다고 볼 때, 흔히들 상하(上下)를 뒤바꾸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고 하니, 나무가 애초에 생장할 수 있도록 수분을 빨아들이는 뿌리가 있는 밑동이 목조각에서는 윗부분, 사람의 얼굴 부분에 쓰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작품에 혈기가 돌 듯 생동감이 넘친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나무의 단면을 잘라 나이테를 살펴보면, 어떤 나무든지 남쪽 방향으로 자리해있던 곳의 결이 더 넓게 나이테가 퍼져 있다고. 또, 세월이 흐르면 심이 있는 곳에서부터 나무가 조금씩 갈라지기 때문에 그 원리를 알고 나뭇결의 방향을 따라, 결을 중심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무의 성질을 알고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나무를 이해하고 작업할 수 있는 박찬수 목조각장. 그는 벌목을 할 때에도 톱질보다 도끼를 주로 사용한다. 이는 나무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일환인데, 같은 수종이라도 나무는 연도, 크기, 모양 등 성질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무의 속성, 나아가서는 나무의 심성을 가지고 작가는 나무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를 따라서 조각을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고, 이는 곧 박찬수 목조각장의 작업 철학이기도 하다.

 

 

▲ 500니한 조각상

 

 


나무의 싹, 목아박물관

박찬수 목조각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목아박물관이다. 이곳은 이제 여주 지역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무 ‘목’자에 싹 ‘아’자, ‘목아(木芽)’라는 이름에서부터 나무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목아박물관은 박물관장이기도 한 박찬수 목조각장의 나무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내부를 비롯해 외부 야외 공간 곳곳에서 부처상과 동자승 등 곳곳에 불교적인 작품이 많이 전시된 것을 보고 혹자는 박찬수 목조각장을 불교미술작가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을 사랑하고 더 깊이 알고 또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과거 삼국시대에 불교가 수용된 이래 불교미술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불교미술 작품들이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만큼, 불교미술을 이해하고 작업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데 필수적이다.

 

▲ 여주 목아박물관


그의 말을 듣고 다시금 눈을 돌리니 작업장과 목아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그저 종교적인 색을 뿜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얼과 역사를 대변하는 하나의 현대적인 기록으로 보인다. 그리고 불교미술 외에도 성모상, 예수상 등 가톨릭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목아박물관이 설립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지난 1989년 설립된 목아박물관은 박찬수 조각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통 목조각과 불교미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세워졌다. 3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내부 외에도 야외 공간에는 대장전, 사천왕문, 석주문, 전통찻집 등 곳곳에 작품들과 자연이 한데 얽혀 예스럽고 아름다운 목아박물관만의 정원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인(匠人)의 품격  

 

▲ 박찬수 목조각장

 

박물관을, 또 작품을 만들어 놓고 가꾸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택과 작업장, 박물관을 하나의 동선으로 이을 만큼 그는 목조각 작업, 박물관 관리, 전통계승의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고 매순간 부단히 움직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작업장으로 향하는 장인정신, 그리고 박물관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위해 틈틈이 직접 가이드를 하며 재미나게 목조각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하는 세심함에서도 그러한 열정이 느껴진다.

붓대 윗동을 터프하게 그러잡고 스윽 일필휘지를 하는 모습이나, 오뚝하니 잘 다듬어진 코가 자칫 깎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귀 같은 연장을 망설임 없이 정확한 자리에 내려치는 동작…. 이러한 박찬수 조각장의 모습은 수년간 진득하니 한 가지 일을 해온 장인만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품격을 잘 드러낸다.

후세에 내가, 또 내 작품들이 어떻게 남고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물음에 박찬수 목조각장은 “나무의 심성으로, 그저 이런 장인이 살다갔구나”가 적당하지 않겠냐며 호방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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