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예술

아트 / 김수정 기자 / 2024-07-22 16:56:11
제주 강정마을, 평택 대추리, 훼손될 위기에 놓인 강. 사람다움을 억압하는 모든 압제의 현장에 대나무 인간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1894년 겨울밤 한 무리의 풍물패가 전라도 고부의 마을을 돌며 농민들을 불러 모았다. 탐학한 관리와 외세의 수탈에 신음하던 농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어느새 성난 물결을 이루었고, 혁명의 기운은 들불처럼 번져 수만 명의 농민들이 죽창과 농기구를 들고 관아로 달려 나갔다. ‘무지렁이들의 혁명’은 끝내 우금치 전투에서 막을 내린다. 그로부터 100년 후 우금치에 이들을 기념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들어섰다. 사람의 형상을 한 7미터 높이의 조형물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이었다. 죽창이 되었던 대나무는 죽음의 자리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또 다른 자아이자 억압에 맞서는 자를 상징하는 ‘대나무 인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대나무의 소리 없는 아우성 



작가가 일러준 주소대로 찾아간 당진 순성면은 흙길에 제비꽃이 무더기로 핀 고운 시골 마을이었다. 훈기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은 아름다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예술가라면 모를까 최평곤 작가가 이곳에 사는 건 조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트럭을 타고 나타난 작가를 따라 좁은 산길로 들어서자 오래된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이 나타났다. 작업실 뒤편은 무성한 대나무 숲이었다. 대나무 인간에 영감을 준 곳이다.

첫 대나무 인간을 우금치에 세운 뒤로 작가는 20년 동안 같은 주제로 작업해 왔다. 그가 만든 대나무 인간은 사람다움을 억압하는 온갖 압제의 현장 혹은 그러한 압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기억하는 자리에 어김없이 나타나 침묵으로 사람들을 위로했다. “저 항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은 정치적인 피켓과 다를 바 없어요. 때로는 침묵이 열 마디 말과 글보다 많은 말을 합니다. 대나무 인간은 침묵으로 외치는 작품이에요.” 그가 침묵으로 외치려는 말이 궁금해진다.

침묵으로 외치는 까닭 

 

 

 

최평곤 작가가 침묵의 투사가 된 데에는 매사에 무덤덤하지 못하는 천성도 있지만 젊은 시절에 겪은 경험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 어렵게 살아온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 시절 공무원들은 이따금 마을을 찾아와 부당한 요구를 강요했다. 작가는 그들과 싸우며 세상의 불합리에 처음으로 눈떴다. 이대로 농사만 지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 후 스물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대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피는 끓었지만 졸업 후에도 딱히 답은 없었다. 다시 고향에 내려와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0년의 학원 생활을 정리하고 나서야 전업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80~90년대 고향을 열병처럼 떠돌았던 막개발을 몸으로 맞서 싸우면서 그가 지켜왔고 또 지키려는 신념과 합당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제주 강정마을에, 평택 대추리에 들어서서 7미터의 장신으로 잊혀진 슬픔을 알리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을 가만히 위로했다.  

 


관에서 불편해 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작품이 강제 철거 되는 부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작업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세상의 아픔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이 타워크레인에 오르고, 같은 일터에서 같은 병을 얻어 사람들이 죽어간다. 세상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그의 작업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대나무는 저 혼자 많은 말을 한다



크게는 12미터에 이르는 대나무 인간들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구상을 마치고 나면 기본 철조 프레임에 길게 쪼갠 대나무를 그물처럼 촘촘히 엮어 나간다. 규모가 크다보니 혼자 작업하기가 쉽지 않아 인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작품 규모를 더 키워보고도 싶지만 운송을 위해서는 12미터가 최대 크기다. 설치 현장에서 작업을 하면 좀 더 규모를 키울 수 있겠지만 비용이 적지 않아 이 정도 규모로만 작업하고 있다.

처음 초록이었던 대나무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을잔디처럼 누렇게 색이 빠진다. 변한대로의 느낌도 괜찮지만 노랗게 변한 작품은 곧 삭고 만다. 보존성의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를 곤란하게 한다. 작품이 곧 삭아 없어지니 선뜻 작품을 사려는 사람이 없고 투자 받기도 어렵다. 그러나 대나무라는 소재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대나무는 저 혼자 많은 말을 합니다. 대나무가 가진 물성은 제 작품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먹고 사는 것도 엄정한 문제입니다.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긴 해야 할 겁니다.”

아픔의 자리에 선 대나무 미륵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그에 대한 극복은 그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세워진 <통일부르기>는 그러한 고민 끝에 힘겹게 내놓은 작품이다. 전쟁과 분단의 한 서린 역사를 생각하면 수많은 사건과 사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라 목이 멘다는 그다. 땅 속에서 솟아나와 북녘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는 듯한 대나무 군상에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발을 멈추고 침묵 속에 통일을 묵시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어떤 평론가는 대나무 인간을 ‘미륵’에 빗댄다. 미륵은 난세에 나타나 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하고 깨달음을 준다는 부처다. 대나무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픔의 자리 위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잠깐의 사색 속에 생각지 못한 것들을 헤아려볼 수 있다면 그의 작품은 이미 미륵이리라.

최평곤 | 1958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나 세종대학교 회화과에서 수학했다. <최평곤·강운 초대전>(2006), <최평곤 설치작업전>(1999), <상록문화제 초대 기념설치전>(1996) 등 개인전을 가졌다. <평창비엔날레: 지구하모니>(2013),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2012), <양평환경미술제: 생태의 메아리>(2009) 등의 그룹전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임진각 평화누리, 경기도 미술관, 제주도 현대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관련기사

Object Art , 구름이 된 잎사귀2024.05.20
모두 돌아간다. 다시 흙의 세상으로... 심다은 <0>2024.06.06
이해와 공존, 관계하는 삶을 조명…김선영 조각가 ‘NET’2024.06.07
마리오네티스트 김종구...반짝이는 줄을 따라 춤을 추었네2024.06.26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