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다영이 쌓아 올린 파쇄석은 1억 년 전 흙의 분진이 기원이다. 물질의 순환을 되짚어내는 것이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추론하도록 채근한다. 깨진 돌조각의 원형을 복원하면서 작가는 매일 정진하고, 매 순간 기원했다.
그가 굳이 무색의 돌덩이를 가슴에 껴안은 까닭은, 세상적 궤도에 점점 가까워지는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반항이자, 스스로를 위로하는 종교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새로운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은 작가의 권리이면서 비정상 상태를 회복하려는 자구책의 일환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삶이 있겠지만 황다영은 더 위태로워지기 전에 기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날선 돌의 모서리가 손끝을 찌를 때마다 작가는 외마디 비명 대신 정화수 한 모금을 마시면서, 각진 바람에 몸을 에이는 사찰 목어의 울음을 들어야 했다. 수천 개의 파쇄석 조각은 부조리한 삶의 파편이고 상처를 찌르는 비수이기에, 이를 묶어두거나 돌의 원형으로 복원시키는 것은 작가 황다영에게 당연지사 한 일이다.
혹자가 “왜 이런 무모한 작업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황다영은 “기원(紀元)으로 회귀하려는 기원(祈願) 이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과 물질 모두 ‘안녕’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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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아트스페이스3'에 전시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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